그룹명/낡은 서고

풀밭 위의 식사

소금눈물 2011. 11. 28. 21:19

 

03/10/2010 05:11 pm공개조회수 1 0

특정한 작가를 좋아해서 내는 책마다 쭈욱 따라오다보면 이런 낭패도 만난다.
시 같은 문장, 견딜 수없이 쓸쓸하고 나직나직한 그 문장들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 그녀가 내는 책은 이전 보다 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이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내 취향이 달라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치장이 너무 많아서, 예쁘긴 한데,화장도 진하고목걸이도 주렁주렁하고 귀걸이도 번쩍거리고 치맛단까지 출렁출렁, 모든 게 너무 과해서 질리게 만든다. 가끔씩 툭툭 던져와서, 그걸 받아보는 기쁨이 좋았는데 요즘은 너무 늘어지고 관념적이다 못해 소설 쓰기가 싫어진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황진이 때부터 그런 것 같다.

"-(략)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아직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우아했지. 그리고 완벽하게 공허했어. 마치 상대가 없는 것 같은 데이트였어. 그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면 내 몸 주위에 우수 어린 푸른빛이 감도는 기분이야. 나쁘진 않아. 대신 몸과 마음의 리듬이 낮고 고요하게 흘러가니까. 감정의 소모도 없고 흥분할 필요도 없어. 그런 게 전혀 일어나지 않아."

이 비현실적인 문어체의 대화문. 지문이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구어체로는 받아들이기가 버겁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결같은 빗줄기가 손님이 들지 않는 때묻은 중국집의 긴 주렴처럼 지겹도록 내렸다. 한결같은 소리로 한결같은 굵기로, 한결같은 속도로. 가끔은 거센 바람이 불고 한낮이 밤처럼 캄캄해지며 천둥과 번개가 지붕을 쪼듯이 무섭게 내려치는 날도 있었다.

-안개와 모래가 뒤섞인 바람이 뭉클뭉클 부는 회색 사막을 걷는 듯 두 눈을 가느랗게 뜨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곳도 그리워하지 않고......


(<내 인생에 하루 뿐이었던 특별한 날> 전경린.)

이런 문장이 참 좋았는데...조미료가 지나치게 들어간 요리처럼 불편하고 미끌거린다. 고만 이쯤에서 접어야할까.좋았던 평론가도 버리고 좋았던 작가도 접으려니 쓸쓸하다.


제목 : 풀밭 위의 식사
지은이 :전경린
펴낸 곳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