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성공과 좌절

소금눈물 2011. 11. 28. 21:14

 

02/02/2010 07:33 pm공개조회수 1 0

제목을 써놓고도 한참동안 망연히 앉아만 있다.
'독후감'으로 생각하기엔 아직도 내겐 현재진행형인 이 고통이 너무 크다.

어제 내가 울며불며 고종석을 놓아버린 데에는 이 책을 읽은 직후여서 머리가 더 뜨거워서였을 수도 있다. 역사가, 시대가요구하는 자신의 삶을생명의 맨 마지막 부분까지 완전히 연소시키며 최선을 다해 살았던 한 사람에게, 노회한 정치가의 연기력 운운했던 그는 얼마나 뜨겁게, 이마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살았는지 나는 거듭 묻는다.

몇 번이나 책을 열었다 덮었다, 한숨을 쉬면서 눈물을 흘리며..그렇게 읽어왔다. 책장을 넘기는 일은 어려웠고 구절들을 되새겨 보며 내 마음을 얹어 곱씹어보는 일은 더 어려웠다. 최고권력자이기 전에 한 정치가로서, 정치가 이기 전에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이기 전에 깨어있는 시민이기를 늘 되새기며 돌아보며 그리 살았던 한 사람, 이런 사람은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이처럼 생각이 많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 나라의 정치가는 더더욱 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내세우기엔 우리의 수준이 너무나 저열하고 한심했다. 어쩌자고 나는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우려고 그리 애를 썼던가. 되돌아 생각하면 우리 수준엔 딱 이회창이며 이명박이었던 것을.

죽어라 애를 쓰며 마음을 끓여도 도무지 알아주지 않는 국민들, 자신의 의도를 일부러 비틀려 호도하며 드러나는 성과 조차 묵살하고 침묵하는 '언론'들, 조롱하고 비난하기에만 열을 올렸던 정치가들에겐 여야도 따로 없었다. 그런 나라에서 그가 대통령을 했다. 그가 좌절하고 실패하기만 오매불망 바라는 무리들 사이에서 생각이 많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대통령의 자리는 사실 무엇을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 않은 자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그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권한이 없다고 누가 말하겠는가.주어진 권한, 권력을 국민에게 돌리고 선출직 공무원으로서의 임무와 과제만을 생각했던 이에게, 자신에게 투표한 이들의 기대와 열망을 생각하며 그 표의 무게와 의미를 생각하며 살았던 이에게, 우리는 그 마음이 얼마나 우리가 오래토록 기다리며 바라왔던 것이었는 줄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백치가 되어버린 국민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던, 너무 일찍 왔던 대통령...

그는 매정하고 독한 평가에 억울해하고 변명하고 싶어했다. 이만큼 열심히 했지만 부족했다며자신의 한계를 토로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이 실패한 것이었느냐, 실패한 성과였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 했고 들어도 외면했고 그렇게 그를 외롭게 했다. 그 자리에 가면 누구나그런 심성을 가지고 국민을 두려워할 줄 착각했다. 그 미련함이, 무지가그를 버리게 했고 우리 스스로를 저주스럽게 했다.

그는 바보였다. 바보 처럼 자신을 버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놓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당시 끓어올랐던 시민적 정신, 그 사람들이 역사와 가치, 민주주의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꿈이계속 좌절되고 짓밟히다가 2002년 위기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그 위기 상황에서그들이 바보 노무현을 만나 폭발한 것입니다. 정치는 그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때로는 이해관계에 민감한 국민들이 아니라 가치에 민감한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치노선을 갖고 꿋꿋하게 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가치에민감한 역사, 또 그런 역사에 민감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까.
우리 다시 87년 항쟁의 마음으로, 또 다시 노무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또 다른 노무현을 만들어낸다 해도 또 그를 버리고 또 가슴을 치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바보..이 땅에서는 한번도 정의가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으면서도 어째서 그렇게 희망을 놓지 못했는지. 성공하지 않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 처럼, 뚜벅뚜벅 그렇게 갔는지.

그가 지상에 마지막 호흡을 놓기 직전까지 고민했던 흔적들, 메모쪽지 속에 남긴 한숨과 고통이 너무나 생생해서 읽기가 버겁다. 그 한숨 사이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그를 얼마나 잔인하게 내몰았는지 확인하는 일이 너무 괴롭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그의 좌절이 결코 우리의 좌절로 끝나지 말아야 함을 깨우치기 위해, 그가 버리지 못했던 희망을 우리가 완수하기 위해.

그 나라에 가서 다시 만나면 그때 떳떳하게 다시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할 수 있게.

열심히 살아야겠다.
정말...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겠다.


제목 : 성공과 좌절
지은이: 노무현
펴낸 곳 :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