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한 아이
소금눈물
2011. 11. 28. 20:52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을 읽었다. 의식과 자아가 별로 발달하지 않아 백지처럼 느껴지기 쉬운 유아기 때, 그 때 받은 상처와 상실감이 이후에 한 인간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가를 보면서 동물의 세계에서 왜 인간만이 그토록 오래 유아기를 가지는가를 생각했다. 그처럼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그야말로 사회적 동물이기에 일찌감치부터 저 혼자 땅을 딛고 살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르고 연약한 그 시기를 충분히 사랑받으며, 언뜻 보기엔 백지같은 그 시간 속에서 남김없이 사랑받으며 키워져야만 온전한 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어쩌면 <한 아이>는 바로 그렇게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살지 못했던 한 존재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예를 보는 듯 하다. 너무나 빛나고 명민한 어린 영혼이 만신창이로 학대받고 고통받으며 스스로를 지켜내는 모습, 또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보고 필사적으로 지켜주려는 한 사람의 마음. 읽어가면서 가엾은 쉴라의 고통과 토리의 안타까움에 몰입이 되어 마치 내가 그 작은 <쓰레기>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의자는 이 반 아이들의 일종의 체벌 의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서장애아들을 돌보는 한 교육자의 사투와 같은 고백이다. 다른 아무 반에서도 받지 않아 보호시설로 내몰리기 직전의 정서장애아동들로 이루어진 여덟 명의 작은 학급이 교사 토리의 반이다. "쓰레기반"으로 불리는 이 학급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원(敬遠)의 대상이 되어 체육관 한 구석에 딸린 방 하나를 배정받는다. 악성 신경질환, 유아자폐증, 지속적인 성폭행으로 유아정신분열증이 된 아이,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아 또래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앞을 못 보는 아이, 충격을 받으면 발작을 하고 의식을 놓아버리는 아이...... 그 하나하나가 어찌 감당을 해야 할 지 모를 위중하고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 여덟 명의 아이- 에 어느날 불쑥 한 아이가 찾아온다. 사실은 찾아왔다기보다는 질질 끌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래보다 훨씬 작은 체구에 코를 찌르는 악취와 침묵, 저를 둘러싼 세상을 온통 분노와 공포로만 대하고 있는 여섯살짜리 계집아이. 그 아이는 벌써 일찌감치 네 살짜리 이웃 꼬마를 나무에 묶어놓은 채 불을 질러버려 사회면 기사에 올라버린 문제적 존재였다. 끊임없는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아이들의 그 본디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치유력을 믿고 있는 토리는 이미 유능하고 마음이 한없이 따뜻한 교사였지만 그도 이 아이 앞에서는 수없이 좌절을 한다. 이 아이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이 존재를 감당해내지 못했고 아이의 환경을 환경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몇 달동안 이룩해놓은, 조금씩 따뜻해져가는 쓰레기반의 보금자리를 일시에 휘저어버린 쉴라의 난폭한 행동에 좌절하고,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한 아이 아버지에 분노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에 힘들어하면서 조금씩 토리와 쉴라는 가까와진다. 다른 사람처럼 자신을 학대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기 시작한 쉴라의 마음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반짝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선물받은 머리핀 하나에 감동하는 아이의 모습은 저절로 눈물이 나오게 했다.
일단 피어나기 시작한 쉴라의 모습은 토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공격성과 분노에 가리워졌던 이면에는 천재적인 두뇌와 감성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테스트도 그 아이의 영민함을 다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아이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다.
조금씩 변해가는 딸의 모습은 술에 찌들어 만신창이로 살아가던 아이 아빠의 마음도 열게 한다. 여전히 족하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술값으로 아이의 옷을 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러워했던 수잔나의 드레스 같은, 인형의 옷 처럼 예쁜 드레스를 선물받고 생애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던 날의 토리의 행복과 기꺼움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만큼의 기쁨이었다.
자신을 고속도로에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버리고 선택한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또 버림받은 절망, 지속적으로 받은 학대의 공포, 온통 먹물로 점철된 아이의 인생에 그것은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다른 어떤 세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행복했건만....쉴라는 또다시 만신창이로 망가져버린다. 남자어른에 대해 비로소 마음을 열고 대하기 시작했는데 그 어린 쉴라를 잔인하게 폭행한 삼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또다시 쉴라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을까.
쉴라를 구하고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오고, 토리가 학교를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다시 자신을 "버리려"는 토리에 대한 분노와 버림받는 공포로 떠는 쉴라의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받아들여지기 고통스럽지만, 캄캄한 이 전의 침묵과 외로움으로 돌아가기 무섭지만 이미 쉴라는 변해 있었고 치유받은 마음은 다른 이에게도 열리기 시작한다.
한 교사의 헌신적인 지극한 사랑은 그 영혼을 마침내 민들레처럼 피어나게 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크던 작던, 드러나던 감추어져있던간에 어느정도의 비밀한 방이 다 있을 것이다.
사랑을 받고 충분히 욕망을 만족시킨 유아가 자라서 타인을 대할 때나 자신을 바라볼때 마주한 현실을 왜곡하거나 자해하지 않고 건강한 의식을 가진다고 했다. 누구나가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며 포용하지 않고서는 다른 누구에게도 건강하게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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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루디아님, 올리신 글 보고 분명히 <한 아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했어요...
그런데 서고 글 찾아도 안 보이더만요.
그러다 비공개로 자료 올리는 창고방에서 찾아냈어요.
이거 제 조카녀석 리포트 해주느냐고 쓴 거였군요.^^;
숙제라길래 아주 모범답안스럽게 썼는데 ㅎㅎ;
그래도 참 좋은 책이었다는 것, 그 감동은 여전합니다.
숙제로라도 책은 많이 읽어야해요 ^^;
그런데 이거 숙제대필이라고 공개해도 되나 몰라.
뭐 졸업 다 했으니 학점 깎일 일은 없겠지요? ^^;
단지우유야, 뽀록냈다 고모가 숙제 대신 해준 거 ㅎㅎ
어쩌면 <한 아이>는 바로 그렇게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살지 못했던 한 존재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예를 보는 듯 하다. 너무나 빛나고 명민한 어린 영혼이 만신창이로 학대받고 고통받으며 스스로를 지켜내는 모습, 또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보고 필사적으로 지켜주려는 한 사람의 마음. 읽어가면서 가엾은 쉴라의 고통과 토리의 안타까움에 몰입이 되어 마치 내가 그 작은 <쓰레기>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의자는 이 반 아이들의 일종의 체벌 의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서장애아들을 돌보는 한 교육자의 사투와 같은 고백이다. 다른 아무 반에서도 받지 않아 보호시설로 내몰리기 직전의 정서장애아동들로 이루어진 여덟 명의 작은 학급이 교사 토리의 반이다. "쓰레기반"으로 불리는 이 학급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원(敬遠)의 대상이 되어 체육관 한 구석에 딸린 방 하나를 배정받는다. 악성 신경질환, 유아자폐증, 지속적인 성폭행으로 유아정신분열증이 된 아이,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아 또래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앞을 못 보는 아이, 충격을 받으면 발작을 하고 의식을 놓아버리는 아이...... 그 하나하나가 어찌 감당을 해야 할 지 모를 위중하고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 여덟 명의 아이- 에 어느날 불쑥 한 아이가 찾아온다. 사실은 찾아왔다기보다는 질질 끌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래보다 훨씬 작은 체구에 코를 찌르는 악취와 침묵, 저를 둘러싼 세상을 온통 분노와 공포로만 대하고 있는 여섯살짜리 계집아이. 그 아이는 벌써 일찌감치 네 살짜리 이웃 꼬마를 나무에 묶어놓은 채 불을 질러버려 사회면 기사에 올라버린 문제적 존재였다. 끊임없는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아이들의 그 본디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치유력을 믿고 있는 토리는 이미 유능하고 마음이 한없이 따뜻한 교사였지만 그도 이 아이 앞에서는 수없이 좌절을 한다. 이 아이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이 존재를 감당해내지 못했고 아이의 환경을 환경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몇 달동안 이룩해놓은, 조금씩 따뜻해져가는 쓰레기반의 보금자리를 일시에 휘저어버린 쉴라의 난폭한 행동에 좌절하고,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한 아이 아버지에 분노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에 힘들어하면서 조금씩 토리와 쉴라는 가까와진다. 다른 사람처럼 자신을 학대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기 시작한 쉴라의 마음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반짝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선물받은 머리핀 하나에 감동하는 아이의 모습은 저절로 눈물이 나오게 했다.
일단 피어나기 시작한 쉴라의 모습은 토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공격성과 분노에 가리워졌던 이면에는 천재적인 두뇌와 감성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테스트도 그 아이의 영민함을 다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아이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다.
조금씩 변해가는 딸의 모습은 술에 찌들어 만신창이로 살아가던 아이 아빠의 마음도 열게 한다. 여전히 족하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술값으로 아이의 옷을 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러워했던 수잔나의 드레스 같은, 인형의 옷 처럼 예쁜 드레스를 선물받고 생애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던 날의 토리의 행복과 기꺼움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만큼의 기쁨이었다.
자신을 고속도로에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버리고 선택한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또 버림받은 절망, 지속적으로 받은 학대의 공포, 온통 먹물로 점철된 아이의 인생에 그것은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다른 어떤 세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행복했건만....쉴라는 또다시 만신창이로 망가져버린다. 남자어른에 대해 비로소 마음을 열고 대하기 시작했는데 그 어린 쉴라를 잔인하게 폭행한 삼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또다시 쉴라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을까.
쉴라를 구하고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오고, 토리가 학교를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다시 자신을 "버리려"는 토리에 대한 분노와 버림받는 공포로 떠는 쉴라의 모습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받아들여지기 고통스럽지만, 캄캄한 이 전의 침묵과 외로움으로 돌아가기 무섭지만 이미 쉴라는 변해 있었고 치유받은 마음은 다른 이에게도 열리기 시작한다.
한 교사의 헌신적인 지극한 사랑은 그 영혼을 마침내 민들레처럼 피어나게 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크던 작던, 드러나던 감추어져있던간에 어느정도의 비밀한 방이 다 있을 것이다.
사랑을 받고 충분히 욕망을 만족시킨 유아가 자라서 타인을 대할 때나 자신을 바라볼때 마주한 현실을 왜곡하거나 자해하지 않고 건강한 의식을 가진다고 했다. 누구나가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며 포용하지 않고서는 다른 누구에게도 건강하게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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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루디아님, 올리신 글 보고 분명히 <한 아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했어요...
그런데 서고 글 찾아도 안 보이더만요.
그러다 비공개로 자료 올리는 창고방에서 찾아냈어요.
이거 제 조카녀석 리포트 해주느냐고 쓴 거였군요.^^;
숙제라길래 아주 모범답안스럽게 썼는데 ㅎㅎ;
그래도 참 좋은 책이었다는 것, 그 감동은 여전합니다.
숙제로라도 책은 많이 읽어야해요 ^^;
그런데 이거 숙제대필이라고 공개해도 되나 몰라.
뭐 졸업 다 했으니 학점 깎일 일은 없겠지요? ^^;
단지우유야, 뽀록냈다 고모가 숙제 대신 해준 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