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어루만지다- 사랑의 말들, 말들의 사랑
소금눈물
2011. 11. 28. 20:47

여는 말에서 지은이도 한 말이지만, 이 책은 그 전에 썼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의 두번째 책 같은 느낌이다. 그 소개만으로 두말할 것 없이 얼른 샀다. (물론 아마도 고종석의 신작이 나왔다면 제목 안 보고도 샀겠지만 ^^;)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군데군데 붙여놓고 연필로 밑줄을 그으면서 신이 난다. 역시 나는 고종석의 팬이 될 수밖에 없다. 행복한 비명이다.
이런 글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에세이? 아마도 에세이가 가장 가까운 말일 것 같다. 작가, 시인, 기자, 언어학자, 에세이스트- 우리말의 여러 동네를 아우르며 그 말들의 연못에서 헤엄치고 살고 있는 이 사람의 글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갈급하던 그 원초적인 즐거움을 만족시킨다. "책읽기의 즐거움, 글읽기의 행복감"같은 것 말이다.
그런 기쁨을 맨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마도 김현이었을 것이다. 참말로 한 줄 한 줄 그냥 넘기기가 아까웠던 문구들, 마냥 어렵고 딱딱한 줄로만 알았던 비평이 그처럼 즐겁고 기꺼운 일이 될 줄을 김현의 평론들을 읽으며 알았다. 그리고 장석주, 아 참 장석주 많이 좋아했었지.. 내 스물 초엽의 독서는 이 사람들의 평론을 미친듯이 뒤져 읽으며, 그리고 그들이 추천한 소설과 시를 찾아읽는 사냥으로 행복했다고 말하련다. 그리고 고종석이다.
그의 장기는 내가 보기엔 소설이나 시보다는 비평, 혹은 에세이가 더 좋지 않나 싶다(이것은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장르이기에 갖는 편견일 수도 있다) 특히나 어떤 문구에서 퍼올리는 그의 글들은 .. 아 내 짧은 말로는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할 뿐이다.
*어루만지다
강제나 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루만지는 행위는 그 대상에게 주체의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다. 때로 그 사랑의 대상은 "청화백자를 어루만지다"나 "소담한 벼이삭을 어루만지다"에서처럼 사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연인이 무슨 일로 모욕을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따스한 언어로. 제 연인이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이 접질렸을 때, 우리는 그 발목을 어루만진다. 따스하고 섬세한 손길로. 그러니까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다. (p.233)
연인을 위무하는 것, 연인의 살이나 마음을 쓰다듬고 손놀음을 하며 위무하는 것이 사랑의 몸짓의 하나라면, 나는 고종석의 말들에서 한국어를 어루만지고 애무하는 그의 손길을 느낀다. 동시에 그것들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내 욕망(언어에 대한 글쓰기와 글읽기에 대한)도 어루만져짐을 느낀다.
고종석의 책은 지적인 쾌락을 준다. 이만큼 글 잘쓰는 사람은 물론 많고도 많지만 그의 글은 다른 이들의 글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진중권을 사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장히, 정말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떤 때 그는 우리 시대의 별나게 말 잘하면서 똑똑하게 유쾌한 유시민을 넘어설 때가 있다) 달변에다, 드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재기를 갖고 있지만 어쩐지 그의 독설은 마음 한 쪽이불편하다. 그의 말과 글이 주는 쾌감은 내게 있어서는 지적인 즐거움이라기보다는, 그래 배설의 쾌락이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는 정말통쾌하기 그지없지만 그가 숨길 수 없이내지르는 그의 마초적이고 때로 폭력적인 지적 우월감은아주많이 불쾌하다. 예컨대, 멀리서 보며 가끔 웃긴 하지만 옆에서 오래 두고 마음을 주지는 못할 사람 같은 거. 고종석이 좋아하는 복거일 역시 나에겐 너무나 멀고 마뜩찮은 사람이다. 그는 내가 보기엔 자기 우물에 빠져 있다. (아 세상에, 오만하고 무지하고 지극히 편향적이고 편견에 가득차서 자빠지는게 일상인 소금눈물이 감히 누굴 보고 자기우물에 빠졌대 --; 하지만 적어도 나는 변명이 되잖은가. 나는 그저 무지한 한 독자에 불과하고 그들은 대중들에게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런 위치에서 발언한 것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고종석의 글은 설사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때에도 그런 불편한 마음이들지가 않는다. 현학을 무기로 자랑하여 남을 가차없이 깎거나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 유연함, 한발 물러서 보는 그의 시선이 편하고 좋다.
그가 시사를 얘기할 때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갸우뚱 하지만 나는 그의 시선, 그의 말대로라면 '서얼'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주 편하고 익숙하다. 그가 안타까워하고 생각을 깊게 하는 대목에서 나 역시 그렇게 그와 같은 시선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니 그런 글도 마음이 편하다. 그가 쓰는 문학비평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어쩐지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종석의 글 전반에 대한 내 막무가내 사랑의 고백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는 나이가 좀 더 먹은 탓일까. 이전의 그 책보다는 말이 길어졌고 그래서 그런지 덜 명징하다. 절판이 되어버린 그 작은 책,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 더 소중해져버렸다.
제목 : 어루만지다- 사랑의 말들, 말들의 사랑
지은이 :고종석
펴낸 곳 :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