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한국사傳
소금눈물
2011. 11. 28. 20:26
역사란 무엇일까.
위대한 인물과 그를 이루는 시대가 함께 어우러져 엮어갔던 지난 발자국, 지난 발자국이면서 또 앞날의 거울인 시간의 이야기, 그것이었을까, 그 뿐이었을까.
나는 역사란 그 시간을 "보낸"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간을 만든, 스쳐지나지 않고 함께 "겪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참 막연한 감상이기도 하다.개개인의 발자국으로 보면 그 시간 역시 나름대로 치열하게 온 생애를 살아간 흔적인 것,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인 것이 "역사"인 것을.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에 비해 우리가 책으로, 지식으로 아는 "역사"는 언제나 너무나 거대하고 무겁다. 그리고 그 큰 이야기에 비해 마음으로 다가오는 숨결은 언제나 멀다. 그것들은 이미 과거에 완결되어진 것이고 그 역사를 스쳐간 인물들은 아득하다.
하지만 이렇게 관념적으로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책상물림들의 말놀임이기 십상이다. 흔히 역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대개 그런 큰 이름들이나 사건으로 떠올려지지않은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TV 다큐멘터리 <한국사전>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그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숨쉬는 살의 이야기, 그 뜨겁고 아쉬운 숨결들의 산 이야기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역사적인 사건들 뒤로 그 역사를 만든 주인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와 후대의 평가에 항변하고 설명하며 또 서러워한다. 그들의 말소리는 티비 브라운관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와 보여주며 이끌어주었다.
이 책은 한 아름다운 인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한 개인이 이국의 여인에게 사심없이 베풀었던 작은 인정이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고 그 인연은 다시 이민족이었던 그들을 이 땅으로 이끌었던 아름다운 인연. 바로 그렇게 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루었던 우연과 그 우연의 힘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 지구 반대쪽으로 먼 길을 갔던 우국지사들,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그들의 조국처럼 거기에 쓰러져 묻혔다. 비운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애틋한 막내딸이면서 그 백성의 보물처럼 여겨지던 덕혜옹주의 모습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솟는다.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슬픔이다. 영조의 한은 어떠했던가. 우리가 기억하는 그 무섭고 독한 아비 임금의 고뇌가 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시청자들을 한숨짓게 했다.
티비로 보는 <한국사전>은 그랬다. 우리가 잊고만 우리 역사의 사람들의 큰 꿈과 거대한 발자국을 새롭게 만났고 또 우리가 국사교과서 시험 문제로만 기억했던 인물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뇌, 그 시간들의 치열하고 뜨거운 숨결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영상의 감동이 오롯하게 살아있다. 보았던 장면의 감동이 다시 돌아보며 생각하는 감동으로 바뀐다. 사료찾기의 어려움과 취재지역이나 시간에 대한 제한이 짐작되면서도 참 알뜰하게 꾸몄고 그 노고는 아낌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참 좋은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여러번 가슴이 울컥하고, 잊혀지기엔 너무나 아쉽고 아까워서 다시 돌아보며 넘기게 만들었던 책, 좋은 책은 많이 읽혀져야 한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그 역사를 위해서도 그렇다.
이 책의 중간 쯤에서 책은, 우리들의 <한국사>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잠들지 않는다"고.
잠들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
제작팀이 굳이 傳자를 쓴 이유를 희미하게 나는 짐작하겠다.
제목 :한국사傳
지은이 : KBS 한국사傳 제작팀
펴낸 곳 :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