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조선의 뒷골목 풍경

소금눈물 2011. 11. 24. 21:46

 

09/07/2007 08:02 pm공개조회수 1 0




역사는 기록된 자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가졌던 이들이라도 그 일과 말이 기록되지 않으면 세월의 먼지 속에서 바래지고 잊혀진다.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존재를 증명받지 못한다.

정사에 오르내린 잘난 사람들 말고, 우리가 다 아는 그런 훌륭한 양반들 말고, 그 반듯한 성(姓) 하나도 옳게 못 갖고, 삼월이나 막쇠 따위로 불리웠던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성과 이름을 제대로 갖고 비단옷을 입고 입신양명 덕에 이름자를 역사에 남긴 이들이 아니라면, 분명히 자신의 일생에선 그 스스로가 주인이었으되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다.
분명히 그들도 그들의 인생에서 꿈꾸고 누리던 것이 있었고 무리를 지어 즐거움을 누리고 분을 내어 다투던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 그러니까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할까, 아니면 잊혀진 사람들이라고 할까. 그런 이들의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조선의 뒷골목'에서 난장을 치고 울고 웃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지은이는 한문학 관계 논문을 쓰다 이렇게 저렇게 만나 쓰임받지 못하고 버려진 자료더미에서 버리기 아까와 모은 책이라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가 어찌 잘나고 훌륭한 몇몇의 한판 뿐이었으랴.
시대가 기억하는 이가 몇몇이겠으며 또 후세가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적을까. 생각해보면 사회는 그 몇몇이 아닌 그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었을텐데.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왔던 역사이야기와는 색깔이 아주 많이 다르다. 민중의들, 시대의 반항아였던 땡추와 군도, 왈자들, 그들이 모여 도박하고 술주정을 하고 세상을 한탄할 때에, 한쪽에서는 끓어오르는 정욕을 삭히지 못하는 양반여인네들의 일탈이 있고 그들을 억누르며 방탕하며 가산을 쓸어없애고 과거장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양반네들이 있다.
성균관의 그늘에 살면서 치외법권지대를 형성했던 반촌사람들, 포도대장집을 습격하는 별감들. 하나하나가 다 생생하고 시끌벅적하다.
어찌나 시끌벅적인지 머리가 다 어수선할 정도로 생동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턱을 고이고 그들을 생각했다.
초립도령의 주머니를 뒤져 달아나던 왈자, 그 왈자와 도망질을 쳤던 들병이 여인, 울분이 서린 칼을 보다 세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었던 검계, 양반들의 전횡에 치를 떨면서 그들의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신분이면서 바른 세상을 위해 검계를 소탕해야 했던 포도청의 이름없는 종사관과 그 수하들...

그들이 숨쉬고 눈물 흘렸던 세상의 이야기.

축지가 그립다.
이부장도 그립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기억하며 살았을까...
그들이 돌아서고 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그 이야기들...

이제는 먼지에 쌓이고 이윽고는 사라진 좌포청의 갈대밭 수련장...


제목 : 조선의 뒷골목 풍경
지은이: 강명관
펴낸 곳: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