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규장각

홍국영, 다음 대의 제왕에게 배팅하다

소금눈물 2011. 11. 4. 16:48



모함에 빠진 세손이 자력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것인가.
국영은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역당을 일망타진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간발의 차이로 수포로 돌아가는 걸 보고 하늘이 세손의 편이 아니라 생각한 게지요.

마음을 주고 신의를 맺음도 아니요, 어차피 자신의 야망을 걸어볼 잣대로 저울질 했던 세손, 아무래도 그에게 자신을 맡기기엔 너무나 약하고 불안한 세손입니다.

전하께서 아무리 세손을 지켜주려 하여도 이 조정은 노론의 조정이지 세손의 조정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국영이 보기에 병판도 음모의 실체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병판을 저렇게 정신없이 뛰게 만드는 더 큰 세력이 뒤에 있겠지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병판과 후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스쳐가는 걸 국영은 보았습니다.
짐작은 하나, 자신이 이 상황에서 세손 편에 서서 무언가를 거들 자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이제  감히 후겸의 앞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지요.
삼정승, 육판서의 지위가 높다 하나 그들은 자신의 승승장구를 기다리며 잠시 머무르는
자들.
임금의 총애를 받고 막강한 노론의 지원을 받으며 그들 누구보다 이미 지략이 뛰어나고 조정에 적수 또한 없으니.




지난밤, 위기를 넘기고 다시 밝아진 후겸의 눈 앞에 국영이 나타났습니다.

동궁전 시강원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조정 돌아가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던 수수께끼 같은 자.
자신이 내민 손을 감히 덥석 잡지 않고 네가 뒷간인지 숲인지 가늠해보고 따르겠다며 오만하던 사내.




어떤가.
이틀이 지났는데 나에 대해 많이 알아보았는가?

후겸은 자신만만합니다.
아직도 네가 나를 감히 더 재겠다는 것인가?



예.
이 것 저것 본의 아니게.

허.

그래, 어떻던가?

글쎄요. 영감께 밉보이면 큰일나겠구나 싶더군요.

수수께끼 같지만 뼈 있는 말을 던지고 빙긋 웃습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군.

슬쩍 말을 비껴받는 후겸에게 국영은 다시 그 허허실실한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합니다.

약조드린 날짜에 아직 하루가 남았습니다.
사냥꾼의 최대 무기는 인내심이지요.
허니, 이 하루가 어찌 흘러갈 지 더 지켜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단한 재기를 갖고 있으나 함부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그렇다고 애써  소매 속에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 자.
이제 더 이상 근심할 일이 없다고 자신만만하던 후겸은 어쩐지 저 사내의 서늘한 미소가 개운치 않습니다.
무언가, 아직 더 남았다는 겐가?
저 자가 보기에 아직 세손에게 무언가 걸어볼 패가 있다고 하는 겐가?

이제 후겸에겐 국영을 손에 쥐는 일이 세손과의 자존심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국영이 누구를 선택하는 가에 따라 자신이 뒷간이 될 수도 있고 숲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지위로 치자면 감히 대거리할 일이 아니나,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저 사내의 기개가 아깝기도 하고 그만한 배포 뒤에 갖고 있을 지략이 두렵기도 합니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꼼짝없이 맹수의 아가리 앞에 몰렸던 것 같은 세손이 그들을 이겼답니다.
역시나 세손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이 쯤에선 국영의 길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사내로 태어나 세상을 흔들어볼 요량을 했으면 위기가 결코 낙담은 아니겠지요.
우리의 국영, 오늘부터 범을 좇을 생각입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발톱도 여리고 북풍한설에 맨 얼굴을 맞고 있는 어린 새끼지만 장차 그 울음으로 숲을 뒤흔들 군왕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