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모국어의 속살
소금눈물
2011. 11. 24. 20:51

문학은 정말 위대한 것인가.
시는 정말 그렇게 뜨겁고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고종석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학이라는 장르에 특별한 위엄을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문학적 재능 곧 글쓰는 재주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춤 추는 재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선선히 인정해야 한다고. 문학은 그 정도로 시시한 것이라고.
엄중한 것이 삶과 역사라면, 하찮은 것이 문학이라고.
미당의 시시한 삶과 시시하지 않은 그의 문학을 일컬어 한 소리다.
하지만 그는 또 말한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문학이라는 초유의 액세서리로 치장할 수 있어서라고.
그가 불러운, 우리문학의 자기 방을 가진 시인과 그 시집들을 읽어온 책이다.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라는 김소월부터 오십 명의 시인들.
휘황하고 아름답다.
우리 모국어의 힘과 그 노래의 눈부심, 또 우리 시대를 아프게 응시했던 처절한 울음과 외침들이다.
그 속살들이다.
그는 시는 <그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삶만큼 역사만큼 위대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어디 있으랴만, 그 삶과 역사를 읽고 기록하고 노래하면서 남기는 것은 시다. 그 시대의 거울이고 외침인 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의 시들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도무지 시 같지 않은 것들이 환호를 받으며 떠다니거나,
혹은 너무나 어렵고 지고해서 도저히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음미하기 어렵게 아득한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시는 멀어지고 가벼워졌을까.
어렸을때 외우고 지금까지 내 기억의 언저리에 잠들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지켜주는 그 아름다운 노래들은 왜 지금은 찾기 어려운 걸까.
하기야, 홍수처럼 떠다니고 목을 조이는 그 많은 말들과 노래들은 시간의 여과를 견디어야만 오롯하게 남는 것이겠지. 그 고갱이를 지금의 사태와 견주면 안되는 것이겠지.
좋은 시를 만나는 것도 행복이지만 그 시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은 더 기쁜 일이겠다.
누군가의 눈과 입을 통해서 그 비의(秘意)를 찾아내는 것은 슬프고 안타깝다.
내 가난한 안목을 한탄하는 것이다.
시에 안목이 필요하겠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
- 그런데 안목은 역시 필요하더라. 이것은 슬프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제목 : 모국어의 속살
지은이 : 고종석
펴낸 곳 :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