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24. 20:45

 

04/05/2006 04:41 pm공개조회수 1 4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은 일이건만, 백설에 덮인 산중에서 흰옷 입은 그대와 마주 선 뒤로
심신에 불이 붙어 날마다 타들어갑니다.
나는 왜 가던 길을 두고 그대를 뒤따라 눈 덮인 잣나무 숲길로 들어갔을까요?
그대는 장님 여인처럼 앞을 더듬으며 위험한 길을 걸어갔는데,
어찌하여 다음 순간 흑나비의 날개짓같이, 그토록 아름다운 눈을 떴을까요?
...

나는 지금 내장을 다 빼낸 짐승과 같습니다.
내 피가 쉴 새 없이 그대에게로 흘러 나갑니다.
이러니 내가 말라죽은들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진에게 상사(想死)한 선비


두 손을 꼭 잡고 그 무서운 호랑이도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소인은 그날 밤에 아씨를 위해 먼저 호랑이 배를 채울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지 않으면 평생 아씨를 위해 뼈를 갈아서라도 살기로 마음먹은 바가 있습니다.
그 마음 이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못 버립니다.


진이를 지켜주고 그 몸을 등신불로 바쳐 일생의 빚이 되어버린 천인 수근.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
이같이 너를 알아버렸으니,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돌아가서 어찌 예전처럼 조석으로 부모님 문안하고 사당으로 나가 조상을 모시며
문중 일을 맡고 조정에서 묵묵히 신하 노릇을 하고 살겠느냐.
어찌 전과 같겠느냐, 어찌 전과 같겠느냐...


묵지 한일규
진의 첫 정인


너무 보고 싶었소.
몸이 타버릴 것만 같았소.
차마 못 견딜 불에 쌓여 산 세월이었소.


진이 유일하게 훔치고 싶었던 남자 이사종.


아마도 내 일생에 네가 마지막 꽃일 것이다.
이 뒤엔 다른 꽃이 없을 것이야.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 혹시 너도 나를 못 잊어 뒤따라 왔나 하고 몇 번이나 방문을 열었으니
홀로 얼마나 어리석었느냐.


대제학 소세양.
한달을 명월과 넘기면 사람이 아니다 만방에 공표하였으나 스스로 사람이 아니라 돌이질 하며 옆에 있어달라며 매달리던 사람.


지난 몇 년간 내 유일한 근심은 너 뿐이었다.


자진실명하고 죽어가던 진이를 살리고 내내 바라보던 의원 홍경화.


두렵다.
그대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대 앞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비굴해지고 결핍감으로 자신을 잃게 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비스듬히 훔쳐보느라 목이 마르리라.
그로 인해 그대 또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을 일컬어 미인박명이라 하는가.
그대는 천하에 고루 사랑을 나누어주고 천하의 사랑을 모두 받으라.
그것이 그대의 운명이로다.


어린 진이를 처음 본 관상쟁이의 말.

내가 좋아하는 전경린작가의 소설.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군 하면서 읽었다.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고 절절하군.

이런저런 말을 붙이려다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의 말로 그만 닫는다.





제목: 황진이
지은이: 전경린
펴낸 곳 : 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