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4. 16:37




그 아이를 놓아주거라

뜻밖의 저하의 분부




생각도 못한 끔찍한 지경에 넋이 나간 송연.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정신이 없습니다.





들끓는 중신들의 비난과 저하의 근심어린 시선을 받으며
무사히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나 그렸냐는, 놀란 청국 사신의 말에도 또박또박 답을 하였습니다.




옳거니.
기대하지 않았던 다모아이의 재주에 저하, 마음이 좋이셨습니다.
재기만 좋은 줄 알았더니 이처럼 총명하기도 하구나
겁에 질려 말 한마디 옳게 못할 일이거늘, 중신들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기린을 어린시절 얼핏 본 기억만으로 옳게 그려내고 거기에 해석까지 제대로 붙이니 잘난척하던 사신은 입이 딱 붙어버리고
저하의 위신도 제대로 지켜졌습니다.

참으로 맑고 밝은 아이로고.
까딱하면 저런 아이를, 외국 사신의 하룻밤 노리개로 망가뜨릴 뻔 하였구나.

저하,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자신으로 인해, 저하는 또 곤경에 처하게 된 건 아닌지.
사신의 노여움만 더하게 된 건 아닌지
안심보다 걱정이 더 큰 송연.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박별제를 비난하는 중신들을 가라앉히고 위로하는 저하.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건 나의 탓이지 화원이나 다모아이의 잘못이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라.

이 얼마나 망극한 말씀이온지.
저하... 저렇게 장성하셨군요.
이렇게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분으로 자라셨군요...
차마 바라보기 황감하고 아득하여라...
이전의 어리고 영특하신 세손저하로만 생각했던 마음이었는데...




낙담하고 황감한 박별제를 위로하고 돌아서려던 저하,
문득 시선을 느끼고 누각 위를 올려다봅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저 눈빛이 낯익을까.
저 아이는 누구길래 저렇게 한없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볼까.

어떤 운명의 이끌림처럼, 그 젖은 눈을 떨치지 못하시는 저하.




그래... 알아보지는 못하시는구나.
끝내 나를 기억하진 못하셨어...

당연한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저하께 커다란 짐이 되어버렸다는 괴로움.
이 천한 것의 처지를 위해 그것을 감당하셨다는 황송함.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큰... 차마 말하지 못할 외로움...

대수야.. 나는 이 말은 너에게 차마 하지 못할 듯 해.
어쩐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듯 해.

이 마음이, 어쩐지 자꾸 서러워지려고 해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