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시계가 걸렸던 자리
소금눈물
2011. 11. 24. 16:32
어제 오후 내내 이 책을 읽었다.
확실히 구효서의 책은 식물적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들꽃들 (나는 거의 처음 들어보거나 모양을 기억할 수 없는)이 더풀진 마당에 헝클어져 피었다가 사라지는 그런 아련하고 이상하게 쓸쓸한 감상이 있다.
그는 삶과 죽음, 기억과 상실이 엇갈려가는 찰나의 순간에 골똘하게 몰입한 이처럼 보인다.
언제나 그 아스라한 경계사이에서 그는 어슬렁거리고 있고 그의 사람들은 현실과 존재하지 않는 시공사이에서 떠 있다.
윤대녕이나 신경숙의 소설이 거의 광풍처럼 지나갈때 이상하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아련하고 아슴아슴한 스타일의 문장에 별로 재미를 못느꼈나보다.
(사실은 지금도 그저 그렇다.)
윤대녕이나 신경숙의 소설들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의 소설들에서는 요즘 소설의 그 당돌하고 날카로운 말투들이 없다. 시선조차 그렇다.
이미 죽어 없는 사람, 기억에도 없는 그 사람의 사랑의 모습들이 그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것이 지난 번 소개한 <몌별>의 얼개였다.
이 소설집에서도 그런 식의 이야기는 자주 발견된다.
죽음을 앞둔 이가 자신이 태어난 시점을 찾아 폐가가 된 고향집을 찾아가서 그 방안에 쏟아지는 햇살을 보는 - 시계가 있던 자리.
죽은 외종형에게서 받은 한권의 키에르케고오르의 일어본 책에서 돌아간 어머니의 사랑(이었을까 아니었을까는 끝내 뚜렷히 말해지지 않지만)- 소금가마니.
영국의 호젓한 호숫가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와 메이드의 이야기 - 호숫가 이야기 등등..
그 장의 마지막을 넘길 즈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문득 모호해지고 지금까지 알아왔던 이가 사실은 부재한 이의 음성인지 아니면 그저 막연한 환상인지, 누구보다 절절한 사랑이었던지 혹은 그저 아무도 모르는 소문의 바람이었던지가 불확실하게..천천히... 빛속에 떠도는 먼지들처럼 흔들린다.
모호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 넘기는 손끝에서 풀물이 드는 느낌.
노란 쑥갓꽃이 내내 창가에 앉았다가 사라지던 몌별의 느낌처럼 말이다.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작가는 자기 이야기 속에 스펀지같은 흡인력으로 독자의 시선과 감정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임은 알겠다.
나는 구효서의 책을 잡고 끝까지 그의 냄새에, 그가 불러오는 바람결에 내내 이맛전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읽는다.
소소하고 쓸쓸한 삶의 갈피들.
뚜렷하게 확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지금 내 곁을 스치고 있는 감정들, 혹은 사랑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고 나중에 역시 특별히 추억이라고 불러볼 것은 아니어도 이 미진하고 불편한 감정이 혹은 무엇보다 간절한 사랑이었음을 되돌아 볼 날이 있을까.
혹은 아니라도....이 찰나의 감정들을 나는 한번 꼼꼼히 기억해볼 참이다.
제목 : 시계가 걸렸던 자리
지은이: 구효서
펴낸 곳: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