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소금눈물 2011. 11. 24. 16:29

09/30/2005 02:21 pm공개조회수 8 15




어젯밤은 몹시 괴로왔다.
가치관, 신념, 사람과 세상에 대한 희망.. 그런 것에 대해 송두리째 회의를 느꼈다.
교만하게도 나는 사람의 자세, 사람으로서의 예의..그딴 소리를 주절거렸다.
정작 어줍잖은 위선을 떨다가 상처를 받은 주제에.

사랑하면 책임을 느껴야는 거잖아.
그래서 괴로운 거잖아.
어째서 너희들은 갈등이 없고 어째서 너희들은 고통을 모르니.
너희들의 무식과 패악이 너희가 겨누는 상대가 아니라 같이 서 있는 이들을 먼저 상처준다는 걸 왜 모르니.
어쩌면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니...

저질러놓고 감당도 못하면서 나는 속이 상해서 혼자 질질 울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소포를 받았다.
한 해를 착하게 잘 살았는지 싼타가 주는 선물박스를 미리 받은 것 같다.
요모조모 정성이 가득 든 살림꾸러미 속에 든 이 책.

이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서점에 갈 때마다 깜빡 잊어먹고 못 챙겨오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무심코 책을 열었다가.....나는 두번째 꼭지부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씻다가 그냥 쿨적쿨적 울어버렸다.
다행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엔 나 혼자 뿐이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
신념에 대한 고통과 고뇌는 이런 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어젯밤에 흘린 눈물은 사실은 값싼 자존심의 상처였던 것이다.
그런 것들은 얇팍한 교양주의자가 치러야 하는 당연한 댓가였다.
나 같은 얼치기가 겨우 그딴 걸로 울었으니, 정말로 그 가치와 신념에 온 젊음을 다 바쳐 헌신했다가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의 눈물은 오죽했으랴.

"사명"과 "신념" 사이에서 이 젊은 의사는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이성이 전하는 전파를 치열하게 고뇌한다.
그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은 그렇게 육신의 병과 마음의 기둥까지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상 이 이야기들은 날선 구호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울림은 더 깊이 퍼진다.
이제 겨우 몇 꼭지를 읽기도 전에 서둘러 나는 지금의 이 따뜻한 위무를 잊지 않으려 독후감(!)을 쓰고 있다.

내게 이 책을 보내준 그 친구는 알까.
어젯밤의 그 찢긴 마음을 이 책이 얼마나 크게 위로해주었는지.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지..
그의 이야기들은 내가 다친 관념들에 대한 말들은 아니지만, 그 사람과 사람 사는 가치에 대한, 그 세상의 믿음에 대한 상처를 위로해주었다.

괜찮다... 괜찮다...
배앓이 하는 내 명치를 투덕투덕 쓰다듬어 주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하루종일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오후는 내내 이 시골의사의 마음길에 기꺼이 동행할 요량이다.




제목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지은이 : 박경철
펴낸 곳 : 웅진 리더스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