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사람아, 아 사람아.

소금눈물 2011. 11. 24. 16:21

06/27/2005 08:22 pm공개조회수 1 4



언니 미안해.
어제 오늘 뿌리도 모를 무기력에 빠져서 내내 곱씹고 있어.
왜 나는 그렇게 함부로, 쉽게, 너무나 단순하고도 편협하게, 다분히 내 못난 컴플렉스가 빚어낸 말들을 언니에게 쏟아부었던 것일까.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계급인 내가, "먹물"들의 "운동"을 믿지 않는다고, 그것조차 다 감상 아니었겠느냐고, 무산계급을 교화시키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유치뽕짝의 착각들 아니었겠느냐고 나는 그랬지.
그 때, 그 시절 노동자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고, 그건 너희들의 것이었다고.
그 때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과 아픔을 함께 주고받던 이는 조용필이었다고, <철의 노동자>를 부르는 이는 노동자가 아니었다고 나는 그랬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언니를 위로해주고 그 친구를 울게 만든 그 감동의 기둥을 나도 맛보고 싶었는데, 어디에서 감동을 찾아야 하는지 그게 왜인지 모르겠다고...

이 이야기를 풀기 위해서는 그 동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소감방...
혁명의 정당성과 허위. 치열하던 그 헤게모니 쟁탈전의 마당.
단언컨대~! 거기서 운동의 이력을 떠드는 인물들 치고 제대로 그 운동의 시간들을 눈물흘려본 이는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그런 말들을 그렇게 함부로 지껄일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는 분개했었지.
남편이 운동권이었다고, 그래서 지금 자기는 얼마든지 여기서 민중과 민중의 한을 소리높여 부르짖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다들 뒤집어지게 웃었어.
내가 그 방에서 집중타겟이 된 게 바로 그 일 때문이었을 거야.
감히 운동권 출신인 내 남편을 웃다니!!
나는 운동권 출신인 남편의 과거를 지금의 치장으로 기꺼워 하는 그 모습을 웃은 건데 말이지.

그랬었지.
<과거운동권>이었던 이들 중에 정말로 저런 생각을 품고 자랑스럽게 오늘을 기꺼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

나는 웃었지만 언니는 참담했을 거야.
나는 처음부터 그들을 몰랐고,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았고 , 새삼 상처도 아니었는데...

운동이나 민중을 자신의 목걸이로나 삼는 이들을 조롱하지만 나 역시 언니같은 이들의 그 무거운 마음에게 가진 컴플렉스 덩어리였다는 거. - 용서해주길 바래...
무지와 편협한 왜곡의 나...

생각해보면, 막연한 미안함, 고마움, 고통 받았던 그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시간이 있다는 거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그 상처가 언니를 아프게 했어.
언니야 말로 그런 궤변들로 가장 아팠을 사람인데.

나는 그렇게 말도 안되는 싸구려 궤변론자들에 대한 조소로 눈이 가려져서 정말 새길 마음을 잠깐 잊었어.
언니나 변방인 도령들은 침묵하는데, 저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토록 아파했는데, 내가 그렇게 마음껏 그들을 조롱하면서 깔깔대면 안되는 거였어.
그들을 가엾어 하면서 지나가면 되는 거였어...

하지만.. 언니니까 내가 그랬어. 언니는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언니는 쑨위에로 이 책을 읽었지. 그래서 그렇게 아프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거야.
그런데 나는... 그냥 <독자>였어. 독자일 수 밖에 없었어.
그 독자와 쑨위에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던 거. 내 이력과 언니 이력의 거리였겠지.

쑨위에와 허징후의 시간들.
언니를 모독할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는 거 알아주기 바래.
언니가 지나온 시간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이력이었는지도, 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래서 언니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는 그 이력을 치장하는 이들이 그렇게 미웠다고...

언니가 쑨위에의 마음이었다면 나는 소설가의 눈이었을 거야.
공감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상처만큼 들어가지는 못해.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고 또 내가 가진 눈의 한계기도 해.

언니,
나는 이 책을 몇 번을 읽어도 언니가 받은 그 위로는 받지 못할 거야.
기막힌 얘기를 하나 더 끄집어내자면, 사실은 이 책을 옮긴 신영복선생에 대한 ..내 목에 걸린 가시하나도 작용하기도 해.
아마, 정말 아무도, 그의 독자 중 아무도 갖지 않을 그 가시가 이 책을 이렇게 불편하게 해.

내 시간들에 대한 위로는, 어쩌면 이런 책보다는, 그때 내가 읽었던 책, 아직도 내게 속삭이고 있는 그 서남아시아 먼 나라의 오래된 신의 이야기들이 더 나을 거야.
건너온 시간의 색깔이 그렇게 해.

그래도 그래.
언니가 얼마나 고마운지, 그때 언니들이 울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알아줘요...
언니가 내 자부심인 거.
언니같은 이들을 위해 내가 거기 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게 떠나고 난 후에도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따뜻하고 뿌듯하게 하는 자랑이라는 거..

그 모자란 사람들에겐, 윤폐인들이 상처를 받았던 것은 그 시간에 대한, 그 시간을 모독하고 싸구려로 만든 것이었다는 걸로 돌려주자.
그들이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거, 자기들을 주장하고 자랑하기에는 그 시간들을 그렇게 만들어선 안되는 거였다는 거, 영영 깨달을 지 못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이 책은 다이허우잉의 책이 아니라 언니의 책이 되겠군.
고마와요. 정말.
내 위로는 언니였어요.
그게 참 고마와요.



제목: 사람아 아, 사람아.
지은이: 다이허우잉
옮긴이: 신영복
펴낸 곳: 다섯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