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경찰서여 안녕

소금눈물 2011. 11. 24. 16:00

01/18/2005 09:03 pm공개조회수 1 10



요즘 책은 참 어렵다.
개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서 가물가물하고 불편하기만 하던 인간의 본성을 뒤지는 것은 좋은데, 어쩌면 천편일률적으로 유행처럼 번진 이런 이야기들이 나는 따라가기가 참 버겁다.
읽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부담스러우니 쓰기는 오죽할까.
애저녁에 그러게 나는 글짓기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었던 게다. 다행이다. 일찌감치 깨달아서.

그러다가 따라가기 좋은 소설을 만나면 참 읽는게 즐겁다. 즐겁다 못해 가끔 질투도 나고 슬그머니 비위도 상해지려고 한다.
쳇! 별것도 없잖아. 이름을 외우기조차 버거운 서양음식을 줄줄이 나열하면서 식도락을 즐기고, 어쩌다 도록에서만 보았던 그림이나 익숙하지 않은 영화이야기를 줄줄이 쉽게 나열하면서 적당히 잘 뭉쳐서 사는 그런 동네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고, 잘나지 못한 내 친구나 형제들도 또 그렇게 사는 그저 그런 모습들의 삶. 그 속에서 만나는 궁상맞고 유쾌하고 슬그머니 짠해지는 이야기들.

김종광의 소설들은 참 발랄하다. 그 발랄함은 발칙하고 메마른 도회지 아이들의 그 반짝이는 감수성의 발랄이 아니라, 진득하고 의뭉스런 충청도 촌사람들의 발랄이다.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자기 할 말 다 하면서도 눙치고 꼽칠 줄 아는, 정면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자기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뒤엉켜 뭉치면서 정수리를 따끔하게 내려치는 그 야유. 능청.
수줍은 얼굴에 웃음도 크게 못짓고 비시시 웃고 마는 이 청년의 어디에 이런 의뭉이 또아리를 틀었는지 모르겠다 .

그의 소설에선 등장인물이 참 많다. 버거울 정도로 많다. 많아서 산만해질 것 같은데 그게 산만이 아니라 다채롭다고 느껴지니 참 부럽고 샘나는 재주다.

이문구선생이 떠났다고 슬퍼하다보니 뒤에 앉아서 혼자 궁시렁거리면서 실실 웃는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딱 젊은 이문구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고 고맙다.

이 나이에 이렇드키 옴팡지고 얄궂은 속을 가진 작가라니.
낄낄대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니 참 헛헛해온다.

너 뭐하고 사니 도대체...
뭐하고 살긴. 주제를 알면 멀찌감치 도망질을 쳐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는 거지




제목: 경찰서여 안녕
지은이: 김종광
펴낸 곳: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