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모랫말 아이들

소금눈물 2011. 11. 24. 15:50

12/06/2004 03:41 am공개조회수 1 3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다.
동화가 아름답고 마음따뜻해지는 작은 이야기 모음들..이라는 생각대로라면 맞는 이야기집이다.
그런데 한번 읽어보고 다시 쉽게 펴지를 못하겠다.
이야기의 매듭마다 아프고 괴로워서, 아 그냥 우리네 부모네들은 이렇게 서럽고 힘들게 살았구나..덤덤해지지를 못하겠는 거다.

전쟁이 막 끝난 모랫말 아이들은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다.
그들이 오히려 그 무섭고 아픈 세월의 장난감이 되어버린다.
강가 억새밭에 살던 걸인 꼼배부부의 이야기. 꼼배마누라와 아기의 죽음을 만들고 만 아이들의 불장난.
정말 아무 악의가 없었지만 아이들의 겨울 장난은 비참한 전쟁통에서 가느다란 봄햇살같은 행복을 맛보고 있던 꼼배부부의 비극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렇게 그 시절을 건너간다.
그것은 마치 그 시절이 만들어낸 일상의 모습처럼,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시절로.

아릿다운 교원이 어느날밤 들이닥친 점령군 러시아 병정들에 의해 윤간을 당하고 인형같이 예쁜 딸아이를 안고 고향친구에게 와 맡기고 간다.
아이엄마가 양공주가 되었다는 풍문이 돌 즈음, 입 하나를 덜어야 하는 소년의 식구들은 그 소녀를 고아원에 맡기고..
표정없는 얼굴로 그저 먼데만 바라보던 소녀는 자기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소년에게 낡은 금멕기 단추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마을의 가난하고 똑똑한 청년을 사랑했던 소년네 더부살이 아가씨 태금이.
맑고 쾌활했던 태금이가 전쟁통에 휩쓸려 미친여자가 되어 나타나서 남자가 다니던 공장터 폐허를, 퀭하니 눈이 뚫린 표정으로 꼼짝않고 바라보는 모습.

이렇게 모랫말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사람들은 아프고 서럽다.
아름다웠던 마음밭은 전쟁에 찢기고 할퀴어서 불에 탄 딱지처럼 뒹굴고 그것을 풍경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폐허든 텅 빈 모래사장이든, 어디서고 놀이마당을 만들어 내어 뒹굴며 자라지만,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눈은 아프고 괴롭다.
그것은 그런 풍경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상처에서 기인한 것일 게다.
남의 것처럼, 남의 나라에서 바라보는 전쟁의 가슴아픔처럼 무상하고 무연하게
"아 전쟁은 정말 없어야 해"
어쩌구 읇조릴 수 있는 담담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자고 이 새벽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는지.
잠을 자긴 다 틀렸다.




제목 : 모랫말 아이들
지은이: 황석영
펴낸곳: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