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24. 15:44

11/24/2004 09:40 am공개조회수 1 17



여편네랑 아들놈은 성당엘 갔다
볕 좋은 이 아침
마흔살 사내는 장독 뚜껑을 연다
뚜껑은 크기대로 잘 포개 두어야 해,
섣불리 떨어뜨려 깨지잖도록 조심조심
심호흡 하고 살짝 얹어두기

이 때 적나라히 드러나는
고추장 된장 간장 막장의 벗은 몸뚱아리여
큰 독, 작은 독에 군말 않고 담겨
제 때 익어가는 분수여
마늘쫑, 깻잎 같은 군살마저
제 안에 품어가는 넉넉함이여
시방 살아 있음의 이 즐거움이여
엿새 일하고 하루쉬는 이 충만함이여
그래요 하느님, 인생은 참 아름다워요

그 장독대 너머 열댓평 텃밭에는
상치 쑥갓 아욱 근대 시금치 그리고
지난 겨울을 견뎌낸
하루나 노란꽃이 소복이 어우러졌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세상을 따스히 군불 때주는 보일러공, 나는 이 사람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속 안찬 희망만 겁 없이 한껏 품고 공부를 할 때 어느 밤, 모임 뒷자리선가 선생님 뒷자리서 슬그머니 고개를 디밀었던 이 시인.
시인이라는 말조차 부끄러워서 자꾸 숨으며 자신이 짓고 불러내는 낱말들에 미안해하던 이 보일러공 아저씨 이면우.
막노동 공사판에서 틈틈히 시를 쓰다가 건설회사 사장님이 부추겨서 시집을 냈다는 이 사람은 자기가 불려나온 그 자리도 익숙하지 않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좀 품위있고 폼나게 책을 짓지 시뻘겋게 표지를 하고 시인의 말이랍시고 떡 하니 '건설회사 사장님 고맙습니다' 하고 책에 박아넣는 사람이 어딨어?"
허물없는 핀잔에 또 슬그머니 웃던 사람.

먹물 많이 먹고 가방끈 긴 이들의 한탄하고 비분강개하며 세상과 자신의 선 곳을 기름기 나게 잘잘 쓸 동안 이 사람은 근처 대학교 보일러 실에서 불을 때며, 공사판에서 벽돌을 골라 쌓으며, 자기 집 천장에 쌓아놓은 묵은 책을 바라보는 비오는 공일에 그렇게 시를 썼다.
시는 그의 삶이지 머리가 아니었다.

부끄럽다.
그리고...세상이 참 따뜻하다. 그가 지펴주는 군불로.


제목: 저 석양
지은이:이면우
펴낸곳: 호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