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고아떤 뺑덕어멈
소금눈물
2011. 11. 24. 15:43
애비는 종이었다.. 이 한마디 진술의 충격을 감당한 이들에게 다시 던지는 한마디
애비는 개흘레꾼이었다.-
김소진의 말들은 그 답답하고 충격적인 언술로 시작한다.
육이오 때 월남한 아버지는 보잘것없는, 아니 개흘레꾼으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였다.
대학물을 먹고 '테제'와 '안티테제'에서 고민하는 그 아들이 감당하는 세계와는 애시당초 주파수가 먼 딴동네였다.
그 아버지가 엄마의 혼수품에 묻어들어온 두꺼운 공책 갈피에 곱게 묻어둔 여인의 스냅 사진 한 장.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 어린, 수전증 걸린 아버지의 필체로 남긴 "고아떤 최옥분"
개흘레꾼인 아버지를 먼 동네 불쌍한 아저씨 연민하듯 대했던 이 아들은 아버지의 그 떨리는 한 구절에서 아버지가 묻고 살아온 무섭고 아프고 서러운 세월을 찾는다.
만삭의 새댁 아내를 이북에 떨어뜨리고 온 남편, 그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은 동네를 떠도는 약장수 뺑덕어멈의 얼굴에서 아내를 찾고, 눈을 뜨자마자 약장사에게 달려가 호객으로 벌이는 악극을 빠짐없이 구경하고 약효가 의심스런 약을 사들고 와서 열심히 먹는다.
아들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글쎄, 능력이 없어 처자식 고생은 꽤나 시킨 양반이었지만, 맴씨만 갖고 따지면야 아주 곱고 맑은 양반이었다"고.
그 '맑고 고운 양반'이 머리 굵은 아들이 개흘레꾼아비를 부끄러워하고 냉소하는 현실에서 약장수 악극단의 여인네에게서 상사병을 앓는 모습이 어찌 이리 애잔한가.
요즘 소설이 참 어렵다. 시도 어렵다.
책 안 읽는 못된 탓을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소진의 소설을 읽다보면 글을 쓰는 젊은 작가의 모습을 함부로 떠들게 정말 아니다.
진솔하고, 성실히, 열심히, 말을 고르고 자기 말 속에서 씨를 찾느라 골몰하는 "작가"의 모습은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줄거리도 힘도 없이 얼레설레 나가다가 말자랑만 퍼지게 늘어놓고 제 갈길로 못찾아 헤매는 어떤 인간에게는 이런 모습은 얼마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가.
부끄러움 끝에 또 하나 사족.
소설보고 느꼈던 감동이 뒤의 친절한 해설보고는 싹 가신다.
왜 그리 고상하고 어려운지. 감동보다 무거운 평은 원작에 대한 믿음에 돌 하나를 얹어버렸다.
어떤 강박관념을 가진 것은 아비와 아들의 대척보다 평을 쓴 이가 아닌가 하는 건방진 오해...
김소진..그립네.
그리운 이들은 왜 그리 갈 길이 급했던 것일까...
제목: 고아떤 뺑덕어멈
지은이:김소진
펴낸곳 : 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