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소금눈물 2011. 11. 24. 15:38

11/10/2004 10:11 am공개조회수 1 21



몸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꽃잎인연>


다모를 보기 전에는 약하고 서러운 꽃잎의 이미지에 그렇게 내가 약할 줄 몰랐다.
한 시절 왔다가 제 할 일 묵묵하게 다 하고 그것으로 남에게 환한 등불의 한 때를 주고 가는 이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몰랐다.

생각하면 꽃만 꽃이었으랴.
잎도, 바람도, 사람의 정도 그 마음을 받아 누군가에게 기울고 피웠던 인연들이 모두 꽃 아니었으랴.

수상한 소문들이 먹장구름처럼 처마밑까지 떠도는 날들
얇팍하게 가진 마음 한 조각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가을날
오늘은 종일 이 얇은 시집에 의지해 보낼 참이다.
약한 것들을 그렇게 아프게 울고, 모진 것들에 찢어지고 터지며 맞서던 시인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세월인가. 닦아진 마음 그릇탓인가.


비가 온단다.
이 비 지나고 나면 가을이 속절없이 깊고 말겠다.


제목: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지은이: 도종환
펴낸곳: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