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24. 15:35

10/26/2004 05:43 am공개조회수 1 6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다...

이 한마디로 가슴밑에 깔린 얼음장이 쩡~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소설.
눈이 창문 밑까지 쌓이는 일본의 어느 고장.. 아니 그저 아득한 어느 눈의 나라.
눈이 쌓인 겨울 역사에서 역장을 부르는 요코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 눈나라를 깨우면 밤기차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을 주었던 게이샤 고마코를 찾아 온천장을 찾아가는 시마무라의 시선으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견딜 수 없이 아름답고 아련하고...눈 속에 떨어진 빨간 까치밥처럼 선연하게 빛나는 고마꼬와 신비로운 소녀 요코, 그리고 쓸쓸하고도 차갑도록 맑은 시마무라.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고마코의 사랑스런 몸짓들, 관능이 관능이 아니라 더 이상 맑을 수 없는 순수의 모습으로 고마코를 비추어주고, 마치 세상 사람이 아닌 양 요코는 아득하고 신비롭게 아름답다.

누가 누굴 사랑했는지, 요코의 애인이었던 병든 남자는 고마코와 어떤 마음이었는지, 요코와 고마코는 또 어떤 마음이 오고가는지 시마무라는 요코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저 신비로운 소녀로만 그녀를 바라보았는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줄거리도 없으면서 그저 하염없이 내리는 어느 한적하고 쓸쓸한 온천장의 옛날 어느 이야기 한자락처럼 읽고나도 내내 그 눈나라에 빠져있는 것만 같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죽음과 삶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슬픔과 아름다움이 합쳐져서 극대화하는 어떤 이미지의 정점을 이룬다. 글이 다만 글이 아니고 얼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랄까.

시마무라를 찾아 숨가쁘게 달려온 어느 밤의, 고마코의 숨소리, 샤미센을 뜯는 고마코를 바라보며 <이런 날은 소리도 다르다>...눈 개인 아침을 바라보는 시마무라. 누에고치창고에 난 불로(자살인지 사고인지 알수 없는) 요코의 몸이 떨어져 내릴때 "몸을 가누고 바로 서면서 눈을 쳐든 순간, 쏴아 하고 소리를 내며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속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는 마지막 구절...

실상, 이 소설에서는 줄거리도 그 줄거리도 의미가 없다. 하염없이 눈이 쌓이고 그 눈이 녹아가며 햇살에 반짝이는 온천장으로 찾아가, 눈속에 떨어진 까치밥같은 고마코와 밤의 눈보라속을 끝없이 뻗어가는 오로라같은 요코를 찾아 시마무라가 되어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

한번은, 한번은 꼭 겨울의 온천장을 찾아 창밖에 하염없이 쌓이는 눈발을 바라보며 고다쓰에 발을 묻고 나도 창가에 앉아보고 싶다.

고마코, 요코, 고마코, 요코 .....


*미시마 유키오가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였네..
자위대의 재건, 봉기를 주장하다 할복자살한 극우민족주의 소설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는 작품 속에서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아무 이유를 남기지 않은 채...
역시 소설같은 죽음...


제목 : 설국
제은이: 카와바타 야스나리
펴낸곳: 문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