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한권으로 보는 사기

소금눈물 2011. 11. 24. 15:28

 

10/19/2004 09:29 pm공개조회수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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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로 인해서 새삼 다시 들여다보게 된 책이 몇 권 있는데 이 <한 권으로 보는 사기>도 그 중 하나이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백 분의 일이라도 챙겨 읽는 것이 불가능하던 그 무지막지한 백만 이백만 게시판 시절, 주옥같은 다모폐인들의 글을 보면서 나는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저들은 다 누구인가. 저들의 지성과 논리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아.. 나는 그저 무지하고 눈물 많은 시청자 중의 하나일 뿐이고 감히 “다모폐인”도 아니었다.
그토록 해박하고 재능많던 폐인들의 지성..

모든 노래와 시의 주인공이 황보윤이고 장채옥이던 시절, 조금이라도 <역사>안에서 만나고 이해해보고 싶어서 샀던 책들이었다.
<사기>와 <백제사>, 그리고 이이화선생의 <역사 속의 한국 불교>,파드마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書>. 그러니 내겐 작년은 다모와 古典들의 해였던 셈이다. 이래저래 다모는 내게 참 여러 가지로 공부를 시켰고 답답하고 무지한 눈을 조금 더 틔게 해 주었다.

(비록 축약, 편집본이지만)사기를 들여다보다가 그토록 성인이었다던 주나라 문왕, 서백창을 보고 나는 윤을 생각했고, 진시황을 죽이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영웅 형가를 보고는 성백을 연상하며 가슴 아팠다. 채옥은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의 비(정사에 기록되어있지도 못한)-은고의 잔영을 입고 있었다. (다모편지의 자료로 필요해서 샀던 <역사속의 한국불교>와 <티벳사자의 서>는 다모편지 중 스승 수월대사의 편지에 스며들었다).
서백창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하고 좋아한 인물로(극적인 요소가 없어서 좀 심심해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문화를 아끼어 그 나라를 강성케 하고 태공망같은 인물을 알아보고 중용한 그 그릇됨을 좋아한다) 나중에 난생 처음 팬픽이랍시고 써본 소설<늦은비>의 주인공 이름이 되었다. 형가도 그 쓸쓸하고 비장한 생애가 가슴아파 연민하였는데 내 소설에선 참으로 난감한 인물이 되어버렸으니 우찌할꼬...-_-;;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읽지 않아도 얼추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책이 바로 세계명작이라고 이름 붙여지거나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이다. 전쟁과 평화, 무기여 잘있거라. 혹은 성경, 일리아드, 오딧세이 같은 책들. 누구나 감동적이라고들 하고 꼭 한번은 읽어보라고 권유를 받지만 정작 시작하기가 지레 질리는 그 문장과 책장의 두께 때문에 시작하기조차 겁이 나는 책들.

다들 알다시피 이 사기는 한나라 무제 때 태사공 사마천이 이릉의 화를 입어 궁형을 당하고 목숨을 부지하며 그려낸 중국의 역사로 그 양으로 보아도 원본은 130여 편,52만 6천 5백자의 방대한 권에 달하고 내용은 삼황오제, 전욱으로부터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영웅과 호걸, 간웅으로부터 당대 제왕, 제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시간 순으로 역사를 기술한 편년체로 씌어졌으나 사마천은 독특하게도 역사서술방식을 기전체로 써서 인물들의 활약상이나 그 각각의 서책의 목적에 맞게 다시 맞추어 엮는 방식을 택했다.
각기 <열전><본기><세가><서><표>로 묶여진 그 원본을 다 통독한다는 것은 사실 정말 힘든 일이고 그쪽 분야에 특별히 공을 들이며 공부하는 이가 아니라면 읽어나가는데만 들이는 공력도 만만치 않으리라. 우리 역사도 아니고 하물며 중국역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역사는 이미 동북 아시아의 문화의 요람이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역사가 만든 인물들과 그 이야기가 고사성어와 일반철학, 정치, 학문, 문화 각 부문에 녹아들어 지금의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도 그 어원이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견디기 힘든 치욕을, 역사를 기록한다는 그 책무 하나로 참아낸 이 인간정신의 무게. 놀랍고 아득하다. 그는 단지 역사를 “기록”한데서 그치지 않고, 그렇다고 알려진 사실에 끊임없이 의문하고 회의하고 그 역사 속의 인물과 “대화”하며 (역사를 기록하며 대화체가 등장한 것은 이 사기가 처음이었다) 그는 바로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놀랍다 사마천이여, 놀랍다 이 위대한 정신의 산물이여!

그 사기를 한권으로 줄여서 나온 것이 이 책인데 뭐랄까 사기의 축약판이라고나 할까. 워낙에 엄청난 대작을 한권으로 줄이다보니 속도가 워낙 빠르고 여백이 없어서 급히 먹다가 체할 것 같은 밥이긴 한데 이렇게라도 빠르게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읽고 나니, 제대로 된 것으로 <열전>이라도 읽어보고 싶은데 솔직히 내가 언제쯤에나 사기 열전을 제대로 통독해볼 날이 올지..... 읽을 책은 쌓이고 다 거두지 못하고 저물어버릴 생애가 아닌가. 읽기도 버거운 것을 그 아득한 옛날, 한 글자 한 글자를 울분과 자괴를 딛고 새기며 역사의 강물을 재고 퍼 올린 그 사람이 두렵다. 인간이 가진 힘의 깊이와 무게가...

옛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고사성어의 유래를 알고 싶은 이라면, 혹은 우리가 알고도 쓰고 모르고도 쓰는 이름들이나 사건에 대해 제대로 엿듣고픈 이라면 “적어도” 이 책 한권은 읽는 게 좋을 듯 하다.

수많은 영웅과 학자, 정치가들이 낱낱의 빗방울로 모여 거대한 황하를 이루었다. 생각하면 그게 가장 무서운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의 무게, 뿌리 깊은 그 역사의 무게.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탐하는 중국인들의 범람하는 강물이 나는 두렵다.




제목 : 한권으로 보는 사기
지은이:사마천
편역: 김진연 김창
펴낸곳: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