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오랫만에 기형도의 시를 읽다.
소금눈물
2011. 11. 23. 15:36
울적한 밤이었다.
오래된 기억으로 거기 앉아있던 이들의 이름이나 그날 들었던 음악은 다 잊었어도
나는 그 말 한마디는 잊을 수 없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그는 좀 취해 있었다.
느린 말투로 천천히 내뱉었다.
아마도 스스로 뱉은 말도 의미 없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느라고 동행했던 이들은, 젖어드는 술기운으로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웅웅거렸고
그는 음계가 하나쯤 내려간 얼굴이었고
나는 묵묵히 맞은 편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은 흔들리는 등의 갓에 가려 어둠속에 묻혀 있을 것이었고
그래서...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내 목소리는 중얼거리는 동료들의 대화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이었고
내 키는 작았으므로 내 마음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집의 앞머리에는 92년 9월 13일..비가 내렸다...
라고 써 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떠돌았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던 그 황동규의 기도 다음 구절..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