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민달팽이 -2

소금눈물 2011. 11. 21. 16:10

09/10/2004 03:44 pm공개조회수 0 2



호봉엄마를 보내고 한 이랑을 더 매고야 열무싹이 이제 겨우 제대로 보였다.
지글대는 지열에 쏟아지는 땀방울을 훔치랴 정신이 없다.
물이라도 한바가지 부어야지 정말 이대로 풀매다 자신이 먼저 죽을 것만 같았다.

고샅길을 걸어오는데 다리가 저절로 풀려 휘청였다.

"드런새끼, 저는 놀기나 해봤지. 니 새끼 낳은 죄가 이거냐."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났을때도 남편은 진중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도, 과 행사때나 엠티를 가도 앞장서서 잔일을 도맡아 썩썩 해내는게 밉지가 않았다. 사내치고는 해사한 얼굴도 곱상했다.
도서관이고 식당이고 좁은 학교에서 이리저리 마주치다보니 어떻게 같이 어울리는 사이가 되어 있었고 학교를 채 마치기도 전에 보람이를 가졌다.
집안 망신시켰다고 난리를 치는 오빠를 막고 엄마는 서둘러 시가를 찾았다.
같이 사고를 치고도 딸 가진 죄인이라고 얼굴이 졸아붙어 죄인이 된 엄마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남편과 헤어진다는 상상은 할 수가 없었다.

은근히 집안 재력을 자랑하는 남편 말을 다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 땅부자가 일부자라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하기야 알았다 해도시골에서 밭 갈고 논 매가며 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밖이었다.
아래로 내리깔고 친정엄마를 대하는 시어머니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는 그때 짐작을 했다.
그래도 집안 첫 손주라고 좋아하는 시아버지 덕에 한달만에 일사천리로 결혼을 했다.
친정오빠가 작은 입시학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떻게 돌았는지 대전에서 큰 학원을 몇 개나 가진 이로 소문이 났고 그게 외로 꼬던 시어머니 마음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은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낳은 딸아이는 돌이 되도록 고개를 못 가누었다.
아이가 이상하다고 느낀 경숙이 아이를 업고 병원에 찾았을 때는 너무 늦어있었다.
강직성 뇌성마미...
아이는 팔 다리를 못 움직였고 호흡도 수월치 않았다.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믿기지 않아 대학병원이고 어디고 눈물 바람으로 뛰어다닐 때, 남편은 막 입사한 광고회사에서 어린 여직원과 정분이 났다.

숨을 잘 못 쉬어 감기만 걸려도 곧장 폐렴이 되어버리는 아이였다.
찬바람만 불어도 경숙은 벌벌 떨었다.
망가진 개혼(開婚)이라고 안그래도 가시눈인 시어머니는 몸져 누웠고, 고개를 못 드는 경숙에게 시아버지는 딱 한마디 했다.

"요즘 사람들은 애 가지면 뭔 검사도 한다더라만, 너는 뭐했니"

경숙은 혀를 깨물었다.
-우리 집안에 병신 내력은 없다.
시어머니의 싸늘한 말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 돌이고 뭐고, 명절때도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다섯살을 못 넘기리라던 아이는 벌써 취학연령이 되었다.
끙끙 앓아서 혼절을 하게 될 때까지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아이였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혹시라도 오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까봐 칼눈이 되는 올케라 까맣게 타는 속을 어디 풀어버릴 수도 없었다.

오냐, 네가 내 덫이냐, 네가 내 업보냐.
그러면 감당하마. 내가 죽을 때까지는 너한테 매여서 감당하마.
속으로 피눈물이 나도 그렇게 견뎠었다.

바깥으로 도는 남편이, 온전한 자식을 못둔 네 죄라고 아내에게 당당한 소리를 할 때도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하루 걸러 들어오기도 했고 며칠씩 소식이 없을 때도 있었다.
아이고 뭐고 수면제라도 먹고 같이 딱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 두번을 치솟아 올랐다.
두 눈에 핏발이 서서 응등거리는 어미를 보고, 어린 것이 무슨 눈치를 채었는지 눈물이 먼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래도 그것은 차마 못할 짓이었다.

그러더니 남편은 결국은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차라리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면 나을 것이었다. 어차피 정도 미움도 식을대로 식은 후라 너는 그리 살아라 나는 이리 살란다 그런 마음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뒤에 밀어닥친 일에 비하면 한없이 편한 생각이었다.

회사 공금에 손을 대어 주식을 했단다.
얼마나 엄청난 돈을 빼돌렸는지 몇억은 가볍게 넘어갔다고 했다.
크진 않아도 걱정은 없던 살던 아파트며 가재도구까지 고스란히 날아갈 동안, 남편은 전화 한 통 없었다.

"갈 수록 큰일이예요. 아무리 무섭다 무섭다 해도 아이엠에프때만 하겠냐 했더니 그건 차라리 호강에 겨운 소리였다니까요. 도저히 안되겠어요. 먹고는 살아야는데. 교구값도 외상으로 때우는 지가 벌써 석달이라우"

혹시라도 손 벌릴까봐 미리 설레발을 치는 올케를 보고, 눈치구더기가 되어도 참아보려던 마음은 산산히 부서졌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여자가, 그렇다고 재주도 돈도 없는 가정 주부가 몸 못 가누는 아이를 데리고 먹고 살 길은 없었다.
그래도 자기네 씬데 죽이기야 하겠냐 싶어서 기어들어온 시가였다.
명절때도 오지 말라던 시어머니니 버선발로 맞아주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설마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