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생인손 -6
소금눈물
2011. 11. 21. 16:06
"그려두 너머 서운케는 생각덜 말게. 자네 장인이 어지간혔어. 허깨비같은 지와집 지붕만 한 채 남기구 갔는디 히망을 걸 게 금쪽같언 아들배끼 더 있겄나. 그넘의 아들이구 딸이구가 참 먼지... 그려두 그 시상이는 다덜 그렇키 살었잉게 당신 낭중(나중)이두 그 봉양은 받을 중 알었겄지. 하긴 머 봉양 바래구 자식 키우넌 부모는 읎지만... 자네 몫이 아닌 짐 지었다구 너머 내색말구, 자네 말대루 어쩌겄나. 빚부자집 홀사우니께 돌아가실때까장은 책임 지야지."
승구는 대답 대신 묵묵히 오이쪽을 집어들었다.
"어디 욱이아범이 그런 유세나 허는 이간디... 알지..알어..."
목포댁이 다시 술을 한 잔 쳐주었다.
"허이고....날도 참 에지간히도 덥다. 아주 앉은 채로 물르겄네.
이러다 꼬추는 거두지도 못허고 태와버리고 말겄네."
"엥간허유?"
"머, 그릏지. 손바닥만헌 산밭이서, 뇡사짓는다고 넘덜한티 말헐 뽄새로 나올 거나 있간디? 마누라가 소꿉장난처럼 오물조물 허는 건디 그려두 그게 신경이 가네.
너머 걱정 말어. 그 냥반이 그려두 막 험하게 망가지진 않았대며? 그만허기 다행이지. 베름박이구 오강이구 몰라보먼 그때가 골치지. 사람 머리통에 생각이랑게 들구 내 맘대루 내 몸땡이 움직거려야 사람이지 지 생각이구 으지구 읎이 되먼 그건 공동묘지 갖다 모시는게 나응 것이여.
부모구 자식이구 간에 헐 수 읎어.. 그릏게 명 늘이먼 참말로 어쩔 것이여? 부몬디 갖다 버리기를 헐 것이여, 아니믄 돌아가시라구 물그릇을 모실 것이여? 그나마 다행이니 생각허구 살으야지.
욱이가 보고 있응게, 낭중이 헐 말 맨든다고 생각허구 참어. 참으먼 다 받어."
아내가 들을 소릴, 혼자 나와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색은 안했으나 자신도 역시 그런 장모가 원망스럽고 한심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행여 남편이 싫은 내색을 할까봐 먼저 큰소리 내는 아내 속을 모르지도 않았고, 아무래도 저는 물러나서 보는 입장일 수 밖에 없고 고생은 실상 아내가 진 것이니 유세할 건덕지도 사실 없는지도 몰랐다.
부잣집 처가라 환장하게 좋아서 장가든 건 아니었지만, 막상 가서 빈 우렁껍데기 같은 꼴을 보고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잖느냐며, 아내가 들고 나올까봐 뭐라 하지도 못하겠던 것이었다.
그게 그래도, 내세울 것 없는 사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데 말이다.
모기가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귀퉁이가 찢어진 종이부채를 들고 다리를 연신 후려치며 담배를 물던 장사장이 먼저 일어났다.
한숨을 쉬던 어찌하던 집에는 가 봐야 할 것이고, 등록금 마감이 되기 전에 내일 농협에 가서 학자금 대출이라도 알아봐야 했다.
승구도 따라서 일어났다.
익숙치 않은 과음이어서 발걸음이 비틀거렸다.
가진 거 없는 인생이어도, 남한테 험한 소리는 듣지 말게 살자고 다짐하며 걸어왔는데, 어쩌자고 자꾸 어깨힘이 빠지고 자신이 없어지는지 몰랐다.
텔레비전이 고장났다고 불러서 갔다가, 처갓집 뒤란에서 처음 마주쳤던 아내의 말간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비틀거리는 것은 그의 그림자 뿐은 아니었다.
세월이 무서워지고 있는 그 자신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