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21. 16:01

08/01/2004 01:02 pm공개조회수 0 2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도 드믄 것 같았다.
잡다한 중고가전제품을 파는 승구의 가게에도 부쩍 매상이 줄었다.
안 쓰고 안 입고 버티는 건 알겠는데, 망가지는 냉장고며 티비는 곧장 새걸로들 바꾸는지 어떤 날은 시작도 못하고 점심을 시키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 아이 학원비라도 보태자고 나서는 아내에게 딱히 할 말도 없었다.
한참 잘 될 때는 아내가 가게일을 보고 배달원 김군녀석과 둘이 돌아가며 뛰기도 했는데, 요즘 같아선 사실 아내가 가게에 나와 앉아 있어도 할 일이 없었다.
내외가 멀뚱하니 얼굴만 보고 날 저물기도 즐겁지 않은 일이라 노인네가 온 김에 아예 집에 들어앉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답답하고 속이 터질 일이었다.

" 많지도 않은 새끼, 남들 다 하는 과외도 아니고 동네 학원 그거 하나를 맘 놓고 못 시키니.."

그예 속을 뒤집어놓고 말았다.

"그러게 누가 나 같이 못배운 놈에게 시집을 오래!"

"못배운게 자랑이야? 잘배운 놈에게 치여서 이를 갈았드만 이젠 못배운 놈에게도 내가 혼나야 하니?"

"에이씨!"

승구는 들고 있던 신문을 집어던지고 방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뻔히 아는 그 속을, 뭐라 할 말도 없고 어찌 풀을 길도 보이지 않아서 맘에 없는 화풀이를 하는 걸 그대로 받지 못했다.
속은 천불이 나는데 가계부 집어던지고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아내와 댓거리를 하다가는 살림 하나라도 깨져야 끝날 것 같았다.

"못살아 증말! 그새 또 오줌을 지렸어. 하루에 몇번이야 도대체! 나도 지겨워, 지겹다구!
정신있고 쥔 거 있을 때는 자식이라고 한번 도닥여주길 해, 살림 밑천 하라고 다만 얼마라두 쥐어봐주길 해. 평생 이년 저년, 먼저 나서 동생 앞길 막는 년이라고 그렇게 성화더니 이빨 다 빠져서 왜 와. 누가 반가워한다고 여길 와.
엄니. 왜 이렇게 사우. 평생 구박만 하고는 못사는 딸네 와서 왜 이렇게 사우..."

높아질대로 높아졌던 아내 목소리가 그예 물기가 배고 말았다.
쿨적대며 걸레질을 할 아내 얼굴이 선했다.
생각같아선 대문이라도 걷어차고 싶던 심사가, 아내의 젖은 목소리를 들으니 목이 답답해졌다.
갑갑한 현실이나, 정신이 풀린 건넌방의 장모나 승구의 숨통을 막고 풀어주질 않았다.

승구는 휘적휘적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이 되어도 열기가 식지 않은 삼복 더위가 후텁지근하게 목덜미를 죄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