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생인손 -2
소금눈물
2011. 11. 21. 16:00
부업이라고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읍내에도 벌써 싼 의류매장이 몇 개나 들어서서 아이들도 제 기분대로 골라입고 싫증나면 버리는 때에,누가 구차하게 줄여입고 고쳐입을 것이 있을까.
딴에는 은근히 욱이 학원비까지 생각을 했던지 기대에 부풀었던 아내의 소박한 꿈은 자꾸만 짜부러지고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쳐지고 구멍나는 자신들의 처지를 깁고 앉아 있는 것 같아 당장 때려치우라고 몇번 큰소리도 내보았지만, 하긴 그거라도 잡고 앉아서 막막한 상황을 잊고 싶은 아내 마음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종일 바늘 구멍을 들여다보다 보면 눈이 빠질 듯이 아프고 허리도 욱신거린다고도 했지만, 그것도 일거리가 있을 때 기분 좋은 투정이지 양복 바짓단 하나 꿰멜 일이 없이 노망기로 오락가락하는 노인네 뒷수발만 하다 하루해가 저물면 장모보다 아내가 먼저 우울증에 지레죽을 것만 같았다.
"드런 놈. 없는 살림에 저 대학 보내느라 산동리 과수원을 허리 한 번 못 펴고 평생을 딩굴고 손 발톱 다 빠져감서 일군 산밭, 신접살림차리라고 홀라당 털어주었더니 못 모셔? 마누라가 감당을 못혀? 부모가 감당허구 말구 헐 호마이까 농짝이냐? 빛 날때는 쓸모 있구, 낡어 빠지닝게 부엌짝에 처박구 싶당만?"
"고생도 했지 뭐. 당신도 자식인데 그렇게 말하먼 안되지"
허리에 파스를 붙여달라고 등허리를 내밀고 있던 아내 목소리가 팩 올라갔다.
"공자님 두째 토막 같은 소리 허덜 마. 나두 공 안스는 좋은 말 헐 중 몰라서 이러는 거 아녀. 자식이 다 자식이여? 저 대학가서 폼재구 다닐쩍이 나는 고등학교도 지대루 못 마치구 방직공장 나가서 그 등록금 보탰어. 나라구 속이 읎어? 철 따라 옷 한벌 마음 놓고 못 사 입구, 그려두 집안 일으킬 것은 남자다 싶어서 피 같이 벌은 돈을 탈탈 털어서 보탰드니 저는 허구헌날 데모질에..배워서 잘난 소리 헐 중 몰르냐? 지넘이 어찌 배웠다구, 못 배운 누나 앞이서 설교헐 띠는 피가 다 솟드라. 누나는 몰른댜. 세상은 그렁 기 아니랴.. 허 참..
동생이지만 참말루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은 걸 참었어. 못 배운 누나 앞이서 그러구 싶었겄다. 지가 어찌 배웠는디. 홀엄니 속창시를 다 끌어내구, 내 청춘 다 잡아묵구 잘난 공부 혀서 집안을 일으키먼 또 뭐랴? 그려두 피붙인디 내가 속이 속이 아니래두 그걸루 견디지 어쩌겄어? 혼자 시상 장허게 사는드끼 폼은 있는 대루 다 잡더니 손바닥만헌 공장 하나 그거 하나 잡지를 못혀서 식모로 들여앉혔던 엄니를 내버리구 가? 에라이 이~!"
승구는 아무 대꾸를 못하고 입맛만 쩍쩍 다시다 말았다.
유난히 아금박스럽게 야무졌던 아내가 동생 뒷댐감당으로 공부를 마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는 건 잘 알았다. 그래도 남 보기 그럴 듯하면 위로나 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저 지경으로 나자빠져 연락마저 끊기고 나니 속이 상할대로 상한 것이었다.
"그렁게 자식이구 머구 다 필요 음써! 지 밥그릇 챙길 나이가 되먼 다 배깥이루 쫓아내서 지들 갈 길 가게 혀야 혀. 애면 글면 그 자식 잘못될까 당신 몫으루 돌밭뙤기 한 뼘 안 냄기구 갖다 바치드니.. 저두 새끼 낳구 사는 넘이 고려장두 아니구 응달진 담벼락이 담쟁이 껍데기 맨치루 겨우 붙어사는 누나헌티 쓸모없다구 엄니를 버리구 가?"
생각할 수록 부아가 치미는 듯 아내의 얼굴은 급기야 싸아하게 굳어져 버렸다.
다음달 욱이 학원비를 두드리느라 엎뎌있던 허리를 끙하고 펴더니 귀찮은 듯 윗목으로 밀쳐버렸다.
승구는 윗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냈다.
유달리 입맛이 썼다.
저녁 내내 혼자 궁시렁 거리며 가계부만 들치고 앉았는 아내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고, 마당 끝 방에서 뜻없이 흥얼거리는 노인네의 노랫가락에도 담배가 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