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수상한 집 -4
소금눈물
2011. 11. 21. 15:56
살이 없는 긴 얼굴에, 정성들여 바른 머릿기름의 보람도 없이 중간머리가 삐져나온 지서기의 인상은 부드럽지 못하고 깐죽거리기 좋아하는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남의 험한 일에는 이름 올리기 일쑤이고 좋은 말 한 번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으시대는 허풍선이라 잔치상에 청해지는 일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그가 빠지는 일도 또 별로 없었다.
은숙이 느릿느릿 다가와서 눈을 내리깔고 섰다.
답답하고 원망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탓할 염치는 없는 사무실인지라 불러놓고 딱히 다른 말도 못하고 속으로 궁시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온 사무실의 귀들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을 터였다.
"긍게 내가 그저께 이른 말이 하나도 안되얐당게. 일일이 일얼 시킬 때마다 확인을 해야남? 귓구멍이 솜뭉탱이 처박은게 아니먼 말얼 들어감서 일얼 하든지"
볼펜 끝으로 장부끝을 신경질적으로 찍어대는 소리를 듣다 은숙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들었다는건지 아니라는 건지 신둥군둥하게 고개만 까닥하고는 제 자리로 돌아와버리는 것이었다.
지서기가 새된 소리를 한마디 할 듯 하다가 그냥 주저 앉았다. 더 채근해봐야 들어먹을 은숙이도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입장에서 밀어부친다고 은숙이 나긋해질 것도 아니었고 공연히 말이 커지면 좋을 것은 더더욱 없지 않은가.
지서시가 못마땅한 헛거침을 패앵~ 내뱉으며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이군이 커피를 빼왔다.
"드세요"
"고맙다"
커미맛은 쓰고 깔깔했다.
아침을 거른 속이 뒤틀렸다.
그러니까 지금 지서기의 말은 왜 갑자기 자기에게서 멀어지냐는 소리였다.
부여읍내로 저녁에 나오란 말을 못들은척 하고 철만에게 건너갔다.
얼마나 기다렸을지는 모르나 멀어지는 정부에게서 버림받는 비참한 심정에다 무너지는 자존심보다 앞서는 급한 마음이고 보니 저도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었다.
은숙에게 지서기나 철만은 매 한가지였다.
마음이 가서 지서기에게 넘어간 것도 아니었고, 또 그 마음이 변해 철만에게 기운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편단심이랄지 목 매달 열정 같은 게 애초부터 은숙에게는 없는지 몰랐다.
아니 그런 것에 상처받고 애닳아 하는 두 남자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마음을 달라 한 적 없었는데 어찌 서운타 억울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과 자신 주위의 남자들을 두고 이런 저런 뒷말들이 도는것도 눈치는 챘지만 그 또한 은숙은 아랑곳이었다.
이군이 금성다방 김양과 주말을 보내던, 면장이 옥류정 김마담과 예정에 없는 출장을 가던 말던 자신은 신경쓰지 않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