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장미원 3
소금눈물
2011. 11. 17. 16:04
"지랄허게 덥네. 염천이 쪄죽일 일 있나"
이래저래 심사 사나운 장사장이 투덜거리는데 수명이 다 되어 팔십노인 해소 끓는 소리를 해대는 선풍기는 두 신선에게 붙박이가 되어서도 영 시원찮았다.
시오리 길을 혼자 걸어가다 고갯 마루 만난 모양으로 헐헐헐 겨우 돌아가는 이 고물은 일주일에 가다 서다 하기 일쑤였는데 그 때마다 장사장이 대충 손을 보아 털털거리기는 했지만 길 건너 삼성전파사도 퉁을 주다 지쳐버린 골동품이었다.
그래도 품 안드는 전기바람이라고, 애시당초 단념은 했지만 자꾸만 손부채가 활랑거려지는게 날씨탓만은 또 아니었다.
"구만혀. 즘심 꿇을라다가 내가 죽겄다. 남은 신문이나 하나 줘봐"
고개를 처박고 들여다보던 바둑판을 끝내 밀어버리고 말았다.
"이 자식아 이우지 살먼서 보태주지는 않얼 망정 하루 이틀이도 아니고 고렇게 엽싸스런 짓을 허냐? 돈주고 사가라"
"그려 나는 인심 잃구 알뜰히 살란다. 너나 나헌티 인심 읃구 국히 나가라"
풀어진 신문더미에서 한 부 건네 받으면서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욕을 던지는 사람이나 그 욕에 간까지 얹어 도로 갚는 사람이나 천상 그 얼굴에 그 말들이었다.
장사장은 점심을 목포집에서 보급소장과 대충 걸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때에 절은 소파가 휑덩그레하게 기다릴 뿐 그새 누가 다녀간 흔적도 없었다.
하도 행색이 꾀죄죄하니 한자 일일교습 모집원이나 보험사원 같은 이들도 건너가는 모양이다 싶으니 한숨이 나왔다.
식곤증에 겨워 한눈만 잠깐 붙인다는 게 내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통에 깨어보니 해거름이었다.
"장씨, 한낮부터 뭔 잠이 이리 짚어? 이러구 밥벌이나 허나?"
행세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얼잠에 깨인 귀에 장씨로 말아걸리는데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얼마나 곤하게 잠이 들었던지 얼굴 한 쪽이 대나무 등받이 자국이 동글동글하게 패어 있었다.
부시시한 얼굴을 쓰윽 쓸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면사무소 지서기였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터수에 반말 섞어 장씨라니, 이런 고얀 것이 있나 그것도 벼슬이라고 유세냐 싶어서 속이 틀릴대로 틀리는데 그래도 뭔 일인가 싶어서
" 뭐여?"
"잠깐 와 주야겄네"
터놓고 말아먹자누만. 싸가지 웂는 넘.
"왜랴?"
대꾸하기도 귀찮고 괘씸해서 퉁명스럽게 던지는데
"이, 면사무소 지붕이 나른나른 헌디 태풍 올라오는 게 니얄 모레라네. 한 번 봐주야겄네. 장마 지나두룩 벨 일 읎이 넘어가나 혔더니 아무래두 손을 봐야 쓰겄어."
지붕수선을 해달라고 온 모양이었다.
"나넌 지붕 같은 건 몰라. 읍내가서 알어봐."
부아가 난 퉁수에 곱게 나갈리 없었다.
"아이구 사람이. 다 아넌디 웨그려. 우리가 지붕을 새로 올린다나? 지와 및 개 뜯구 봐얄 것 같은디 당췌 우리는 사무나 알지 그런 일얼 히 봤으야지. 공무루 나가는 겅게 품삯두 바루 나갈던디 ...."
히죽거리며 던지는 말이 기가 막혀서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끝엣말이 솔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