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귀향 4
소금눈물
2011. 11. 17. 15:38
괴팍스러워 남들과 허튼 술자리 한 번 없던 노인이 난데없이 버섯공장을 하겠다고 나선게 언제였던가.
콩 한 개 뿌려서 제자리에 꼭 한 개밖에 못 거두는 성품에 일을 내려고 그랬는지 느닷없는 버섯공장이라니.
다들 말렸지만 기어코 조합에 빚을 내어 어떻게 창고를 내고 거름을 실어다 나르고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세울 것 없는 논마지기 몇이 전부였던 터라 한정없이 들어가는 밑천은 감당할 수 없었고, 어떻게 이웃 몇을 걸어 보증을 세웠는데 뾰죽할 것 없는 시골살이인지라 또 연줄연줄로 네 집 내 집 할것없이 길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마을 거개를 조합에 걸고 벌인 버섯공장이 없는 이력에 금방 싹수를 보일 틈도 없이 주저앉았고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놓아버렸다.
장사를 치르고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조합 대부계에서 들이닥쳐 보니 당신이 건 이름은 두엇이었지만 서류는 열 대여섯을 넘고 있었다.
아는 처지에 거절은 못하고 설마설마하다가 발등을 찧은 이웃들이었다. 너나집 할 것 없이 고만고만한 살림들에 써 보지도 않은 빚들을 떠안고 온 동네가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가 났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때부터 우리집은 마을 공동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졸지에 가장을 잃고 반쯤 넋이 나간 엄마는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었건만 풍을 맞아 쓰러져 버린 것이 꼭 보름만이었다.
열 네살 어린 내가 보아도 세상 눈치는 빤해서 하루 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우리집은 한숨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한 솥 식구처럼 드나들던 이웃이 천리로 멀어지고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받았다.
어린 내가 그 지경이었으니 머리 굵어가던 언니 오빠가 겪은 고초는 오죽이나 했을까.
하루 아침에 가장이 된 언니가 안해보던 직장일을 한다고 집을 나갔다.
먼 곳 어디라 했던가. 집에 자주 들르지 못하는 언니였지만 처음 한 두해를 넘기고 나니 그래도 가끔은 목돈을 부쳐와서 조금씩 숨통은 트였지만 버는 손이 없고 들어갈 입은 컸던 지라 살림꼴이 펴지기는 애초에 틀린 일이었다.
엄마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오빠나 나나 대책없이 언니만 바라보는 어린 것들이었다.
"부여서 봤는디 행색이 인자 같지가 않드랴. 아무래두 평범한 직장은 아닐게구...."
"배운 것이 높아, 가진 게 많어. 갈 디가 많기나 헐라구? 얼굴이 곱상허니 그 재산으루 먹구 살 밖에. 에이구.....저도 부모 잘 못 만나서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에 웃음이나 팔 일이니....참....쯧쯧쯧....."
이웃들의 한탄이 우리집 울을 넘어들어오는 지경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언니가 하는 일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길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펴질 길은 있었던가.
어느해 늦가을 저녁에 들어온 언니의 가방에는 적지 않은 돈이 있었다.
오빠나 나나 묻지 않았고 알았다 해도 다른 길은 없었을 것이다.
기약없이 아득했던 빚문서를 꺼내놓고 언니는 오래 울었다.
그 며칠 후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떴다.
남의 것이 되어버린 논두렁을 지나오면서 오빠는 말이 없었다.
볼을 할퀴던 때 이른 바람이 자꾸 눈을 가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