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돌말사람들

그 사람 박봉찬 전 2

소금눈물 2011. 11. 17. 15:09

 

12/04/2003 01:48 pm공개조회수 0 0


선대를 이어 내려오던 적지않은 문전 옥답을 당대에 깨끗이 정리하고 복잡한 가정경제야 마나님께 맡기고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었다.



길었던 한국적 민주주의 영도자 시절에 몇 번의 선거출마로 사나이 품은 포부를 세상에 뻗쳐도 보았다. 그때마다 뜨거운 애향심과 조국애에 비례해 그의 가산은 드러나게 몸집이 줄었다.

집사를 두고 마감하던 가을 걷이가 마나님의 한숨으로도 간단히 정리되고, 아이들의 수업료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러서도 오직 걱정하는 바는 낮이나 밤이나 호시탐탐 내 조국을 노리는 이북놈들과 향리의 썩은 관료들이었다.



백마가앙 다을바음에~~ 물새에가 우으을어~~~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에 도도히 취흥에 겨운 그의 노랫가락이 잠든 마을 개들을 다 깨웠다.



자투리처럼 남은 천수답 몇 마지기가 오늘이냐 내일이냐로 제 갈길을 못 정하고 있는데, 호방하고 인정많은 그는 술동무들과 밤드리 노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이구 저 인사, 갈데 없는 귀신 뭐하고 안 잡아가나"



끙, 돌아누우며 혀를 차던 아버지.



잡다한 세상사에 손을 대 본 적이 없으니 마을 일을 알 수 없고, 또 자신의 드넓은 포부와 기상에도 쪼잔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마을 노인들의 한숨은 도무지 맞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에겐 김이장댁 둘째 아들이 중동에서 다리 하나를 내어주고 돌아온 일도 아랑곳이었고, 지난 여름 수해에 무너진 아랫다리 노역에 부조도 하지 못하고 면목없는 안사람의 한숨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어찌 그리 작은 일에 연연하여 마음을 주능가. 사람이 지 할 바를 다 허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다, 하늘이 알아주먼 그걸로 족할 일이요, 또 불행히 자기의 뜻을 몰라주어 꺾인다 혀도 사람이 또 어찌 하늘에 원망을 하리요. 하늘 아래 미물로 겪는 일이 다 그 사는 일에 맞춤혀서 정해져 있거늘...."



외상진 술값이 쌓여서 못 준다고 성화인 도가집 김씨에게 눈물 한동이를 쏟고 얻어온 막내 앞에서 그윽하게 던지는 한마디로 부질없는 세상사는 간단히 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