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빈 뜰
소금눈물
2011. 11. 16. 21:05
오래전 그 집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진 큰 집이었다.
담장 밖으로 흰 배롱나무 가지가 뻗어 나는 배롱꽃 흔들리는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기웃거리곤 했다.
젖은 하늘을 이고 흔들리던 배롱나무 꽃잎이 자꾸 가슴 언저리를 문지르면
발목이 젖는 줄도 모르고 아른대는 그 꽃이 좋아서, 그 고요한 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종일을 혼자 서성댔다.
꽃은 끝없이 피고, 피었다 지고, 다시 피고...그러다가 피고 지는 꽃이 내 가슴으로 옮겨와 그만 그 꽃으로 물들어버린 줄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집이 항상 그 집인줄 알았더니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꽃의 뜨락인 줄 알았더니
오늘 빗속에서 다시 그 집을 보노라니
꽃은 보이지 않고 고요한 뜨락에 빗소리만 가득했다.
꽃이 져버린 뜰에 이제 나 혼자 서 있는 줄을 이제 알았다.
아니 아니, 저 댓돌의 꽃신들이 아직도 나란히 나란히 있으니
그들은 다 저 집의 안쪽에서 꽃을 따서 놀고 있으려니와
밖에서 혼자 서서 빈 나무만 탓하고 있는 못난 손님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다들 잘 있으니, 다들 저 안에서 평안하니
우리가 언제 떨어져 흩어질 일이야 있으랴.
비오는 밖에 혼자 서서 빈 나무만 바라보고 탓하는 못난 이는 나 혼자 뿐이려니
꽃을 보고 꽃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그 꽃의 시절을 잊었다 탓하는 어리석은 이는 되지 말자고
나는 꽃을 감추고 있는 배롱나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