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06년 성지순례 15 - 매화밭 (2)
소금눈물
2011. 11. 16. 20:57
06년 성지순례 15 - 매화밭 (2)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너무나 행복한 순간들을 맞을 때마다 소인은 딱히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슬픔이랄까 쓸쓸함이랄까.. 그런 것을 느끼게 되오.
이것이 나이들면서 맞는 점점 짙어지는 우수...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때이른 비관인지 아니면,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인지..그것은 모르겠소.
작년에 그토록이나 열심히 순례를 다니면서 마음에 점 하나를 찍고 책장을 넘기는 듯한 기분이었소.
다시 오긴..다시 이 마음으로, 이 친구들과 오긴 어려울거야. 아니 내년에도 나는 이 마음일 수 있을까. 이 사랑을 고스란히 그대로 나는 안고 있을까...
아직은 사모가 다하지 않았는가 싶소.
저 명판을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싸아해졌소.
뜻없이 그저 홍보의 수단으로 붙여놓았을지도 모르는 저 표지판이, 여기를 스쳐간 수많은 다모폐인들에게 어떤 그리움과 뜨거운 애정의 증거였는지..아마도 저것을 달아놓았던 이는 짐작도 못할 거요.
잠시...감감히 바라보면서 이 후로는 다시 이마음은 무엇에게든 쉽게 주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오.
왜냐면,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을 우리는 다른 어디에서든 그렇게는 찾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오.
그리고 또한 그날들의 우리의 모습을, 이후로는 그렇게는 겪지 못하리라는, 말그대로 전쟁같던 그 사랑의 순간들을 다시 우리가 겪어낼만큼 우리가 강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소.

아직 햇살이 다 나지 않은 이른 아침이건만, 눈부시게 먼저 피어 기다리는 매화.

저기 어디쯤 그들의 그 밤이 있었겠지요.
아프냐...나도 아프다. 너는 내 수하이기 이전에 내 누이나 다름없다.
나으리...나으리를 모신지 십오년입니다. 지나오신 고통의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나리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건 볼 수 없습니다..
너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내 꿈을 이루고 싶은 맘은 없다....

꽃그늘 아래서 그 다정하고 따뜻하고 슬프던 말들이 가만히 떠오르오.
그 옛날, 그렇게 아프고 따뜻하던 연인들의 모습이...날리는 꽃가지에 가만히 깃들어 소인을 바라보고 있었소.

저기 어느길을 그들은 걸어왔겠지.
푸른 그 달밤.. 흐르는 것은 물소리 뿐인, 숨막히게 꽃이 흩날리던 그 밤을, 아픈 팔대신 한없이 벅차고 따뜻한 옥이와 그 옥이의 상처를 대신 아픈 종사관이..가만히 그렇게 걸어오던 밤이 있었겠지.

어허! 그런데 이게 왠일!!
정신을 추스리고 막 매화동산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난데없는 도령들 두엇이 길을 가로막더니 금줄을 치는 것이었소!
"아니 이것이 무엇입니까?"
"영화 <천년학>촬영준비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부터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뭣이라!!!!
우리가 그 먼길을 무엇때문에 왔는데 매화밭에 들어서서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오!!
" 돌아갈 수 없어요. 우리가 얼마나 먼데서 왔는데요. 우리 다모폐인이라구요!! 잠깐만 들어가게 해주세요. 방해안되게 얼른 다녀올게요."

천년학이든 백년학이든, 임권택감독님에겐 죄송하지만 그 영화보다는 우리에겐 다모의 추억이 더 소중하고 급하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스탭에게, 우리는 목청을 돋우어서 잠시만 다녀오겠노라고 애원을 하고 미적거리는 얼굴을 잽싸게 밀치고 도련님 바위를 향해서 후다닥 달음질을 했소.
딱 오분만이라고 소리치는 걸 행여 들어가지 마랄까봐 정신없이 찾기 시작했소.
사진 아래쪽 삐꿈 보이는 것이 금줄을 치는 스탭이라오.
행여나 그 오분이 늦어서 못들어갔다면, 공연히 우리 차를 찝적거려서 발을 묶은 농원의 아줌니를 무지하게 원망할 뻔 했소.

그러나...
그토록 안따까이 찾은 도련님 바위는 너무나 초라해서 우리를 슬프게 했다오.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수억개 떠다니는 별 중의 하나일 것이나, 그 별에게 마음을 묻은 이에게는 온세상의 밤하늘에 단 하나인 별일 것이오.
저 평범한 바위에 마음을 붙이고 그 먼곳에서 찾아온 우리에게, 그저 바위 그 뿐이었을 것이오?

농원 사람들에게는 그 넓은 산자락의 바위 하나일 뿐이었겠지요.
죽은 나무삭정이를 얼기설기 얹어놓은 꼬라지를 보니 가슴이 아프더이다.
작년 봄에 바위아래를 졸졸 흐르면서 매화잎을 담고 있던 작은 개울도 말랐고...
그래도 보이는 모습이 초라하다 한들 보는 우리의 마음까지 초라하겠소?
도련님의 갓이 올려졌던 넓은 등을 쓰다듬어 보고, 우리끼리 아프냐~ 나도 아프다~ 종알거리면서 맴돌았소.
눈에 띄지도 않게 벗어난 곳에 숨은 바위라 알기 전에는 찾기 어렵겠다고 탄식을 하면서...
영화 촬영 시작한다고 빨리 나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구랴.
투덜거리면서 물러나오. 여길 보자고 한껏 부풀어서 새벽잠을 설치면서 나온 것인데...


꽃그늘 너머서 무얼 하는고 삐꿈 들여다보니 배우인지 스탭들인지 세트로 지어놓은 초가집에서 웅성거리고 있었소.
아 그러고 보니 기억났소.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서 여러번 엎어졌다는 천년학. 참 거기에 옥이 아부지가 나온다고 했었지!!
"가서 사인이라도 받아올까?"
"옥이 아버지 이름이 어떻게 되었더라? 장일순? 이순?"
"몰라~ 나는 포청 사람아니고는 이름 기억 안나요!"
"그래도 황보현감이 존경했었잖아. 가서 받아오까나~"발묵".. 아니면 "발목"이라도 좀 써달래구;;;"
갈 마음도 없으면서 궁시렁궁시렁 쫓겨나오자니 참 이거 서글퍼서...

아니 촬영은 꼭 이렇게 손님들이 제일 많을 일욜날 해얀답니까?
천리길을 멀다 않고 간 이들이, 여기서 발을 못내딛고 바라만 봐야 했다면 그건 누가 책임진대요?
"죄송합니다. 우리도 농원측에 협조를 구하면서 어렵게 찍는 중이라"
흥!!

차마 발길이 안떨어져 되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저 정자에서 바위가 보일까?"
" 옥이를 왜 굳이 바위그늘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셨어야 할까나? 정자도 있는데..."
"눈길이 무서웠던게지. 조선시대아니오?"
"그래도 옷을 다 벗고 팔뚝의 맨살을 보이면서 그러는 사이끼리 뭘~"
"아 그러니까 그이들은 원체가 그런 사이였다니까요"
"그러게 원해도 알고 온 포청이 다 아는 뻔한 커플을 둘이서만 아닌 척 내숭들이셔~"
"얼레리꼴레리~"

언덕아래 매화구름을 내려받아 흘러가는 섬진강...

아마도 매화는 이번주가 절정이 아니었을까 싶소.
꽃은 피기는 어려워도 지기는 잠깐이라는 시인의 탄식이 떠오르오...

뭔넘의 사진쟁이가 이모냥인지 ;;;

찍히라는 접사는 아니되고 저 손가락으로 맞으면 최소한 자리보전이겠구랴. 겁나오.

에구머니;;
요건 또 모래?
"음마. 저 바람개비 쓰실 건가요?"
"네"
"안되요!! 다음주에도 우리 다모폐인들 올텐데 매화꽃 다 날리면 어떡해요 절대 안되요!"
".....

"제발 꽃잎은 떨어뜨리지 마세요."
" 바람은..위로만 살살 올려요"
도무지 못미더운 소리구랴.
안그래도 만개하면 금방 낙화일텐데 걱정이오.
혹시나 마음에 계획하신 분들 있으시면 서둘러 가보시구랴.
에구.. 저 도령이 소인의 말을 새겨두어야 할텐데..

동백꽃 사이로 보이는 매화농원의 장독들.

매실제품을 팔던 곳 겉에 붙어있던 사진이라오.
사실은 사진보다는 사진 아래쪽에 도련님 바위가 보이나~ 하고 찍어본 것이오 ^^;

해가 중천에 떠올랐소.
늦은 아침을 먹으러 들른 섬진강변의 밥집.
뿌연 물안개가 걷히고 반짝거리는 물비늘이 강바람과 함께 다가오오.


섬진강에 왔으니 재첩국과 섬진강 참게탕은 먹어보아야겠지요?
생각해보니 참게를 언제 먹었는지 아득하오.
소인의 고향 백마강 자락에도 예전엔 참게가 참 흔했는데....
아아 다음은 드디어 우리 도련님의 마음의 품자리, 관음사의 모습을 빌려주었던 선암사입니다.
서둘러 가봅시다.
거기에서 뭔 짓을 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