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성지순례 13- 정암사 가는 가을여행 (3)
소금눈물
2011. 11. 16. 20:51
성지순례 13- 정암사 가는 가을여행 (3)


우거진 나무숲으로 빛도 마음껏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
그래도 단풍은 저 홀로 절정이오.

아아...그 사람의 흔적...
그립고 아픈 그 사람....

도련님이 내려오시던 돌계단에 멈추어 섰소.
지금까지 숲을 가로질러가던 새소리도 그쳤고, 꽃같이 어여쁜 저 단풍도 눈에 보이지 않소.
거기는 우리 그 사람의 자리.
눈길을 뒤로 하고 내려오던 그 사람의 그림자가 돌계단 마다 곳곳이 아로새겨진 그 자리...

신천현감의 서자...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었지만 그 분은 또 함부로 정을 보여주지 않았던 어려운 어른.
다른 여종에게도 "하오"를 듣던 천한 신분의 어머니.. 아프고 서러운 그 어머니.
총명하고 재기가 뛰어나지만 그 재기 때문에 양반가의 자제들에게 질시와 설움을 더 받던 어린 도련님.
부제학의 고명딸에서 하루아침에 역손의 관비로 전락한 일곱살 계집아이 재희...
황보현감은 분노와 슬픔 뿐인 아들의 그릇을 만드시려고 조선 마지막 승군 도총섭인 수월대사에게 부탁을 하고 그 뒷바라지로 어린 여종을 딸려서 관음사로 보내오.
하긴.. 그 불쌍한 재희에게도 이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오.
종의 세계에도 층층시하가 있었을 것을, 차라리 인적 없는 암자에 그렇게 보내는 현감의 마음은, 어린 재희가 감당키 어려웠을 관아의 매운 관비살이를 염두에 두셨을 터.
비록 그 사람의 사상을 따라 역모에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장일순 대감을 존경했던 황보현감..
그 자식들의 악연을 짐작이나 하셨을까... 생각하면 기막힌 인연이오.
저 어린 여종을 안스럽게 여겨 같이 자라게 하였더니 그 아이가 당신의 아드님을 그리 보내게 할 줄이야...
후의 그 모진 인연이야 그렇다 치고...
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고 아프던 그 어린 마음들이 자라 서로의 모습과 마음을 담게 된 두 사람이 이렇게 이별을 했소.
저 고운 낙엽이 흰 눈으로 덮인 그 겨울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좌포장을 따라가는 도련님은, 나무 뒤에 숨어서 소리죽여 흐느끼는 옥이의 눈물을 벌써 다 보았을 것이오.
비로소 세상에 그 포부를 펼 기회가 왔으나 이 이별을 가져야 하는 출사였으니..
세월은 무심하여 그들이 떠난 이 자리에 수십 수백의 계절이 바뀌고 잎이 자라고 그 잎이 다시 지고, 눈이 내리고 다시 그 눈이 녹고...
그 길을...이렇게 먼 후일의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워하여 다시 이곳에 서 있소...


돌계단을 지나 수마노탑을 오르다 내려다 본 산 아래.
정암사 경내가 얼핏 보이오.

수마노탑이라오.
이 탑에 대한 여름의 이야기는 다시 이 폴더의 <다모답사- 정암사>편에 이미 올렸을 것이고...
이곳에서는 사진기를 동영상으로 돌려서..사실 사진은 없소. ^^;;

여정길은 다시 길 위에 서기를 재촉하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를 않소.
다시 오는 날은 겨울일까..
하마 그립고 애틋한 마음을 둔 채 다시 떠나는 길.
도련님...
당신은..이렇게 우리를 오래 당신의 그림자에 묶으시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