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부셰
헤라클레스는 인간 중에서 대적할 자가 없는 영웅이었다. 그는 죽은 후에 신의 반열에 오를만한 자격을 갖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처음부터 신의 아들로 태어나 곧바로 영광의 이름을 얻은 행운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가장 잔혹한 시험들을 모두 겪고 통과하면서 얻은 고통의 결과였다.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친구 이피토스를 죽였다. 우발적인 살인도 그 죄가를 묻게 마련이어늘 하물며 친구! 헤라클레스는 다시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궁전에 들어가 3년간 노예생활을 하면서 죄갚음을 한다. 오만하고 당당했던 여왕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에게 반해 그를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여 사랑을 나누며 정부로 만들었다. 이 장면은 바로 그 이야기다.
시선을 바로하기가 민망할 만큼 전면 가득 펼쳐진애욕의현장이다. 적나라한침대위의 남녀, 거기다가 보란 듯이정중앙에서 만나는, 옴팔레의 젖가슴을 움켜쥔 헤라클레스의 손아귀. 우윳빛으로 빛나는 풍만한 젖가슴은 그림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을 저절로 이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관람자의 민망한 체면을 생각해서 두 주인공은 슬쩍 눈길을 돌려 상대방에 몰입해있으니 훔쳐보는 관객을 배려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짐짓 모른 척하는 그들의 행위는 오히려 맘놓고 훔쳐보기에 적극 동참하게 하니 더 강도가 센 에로티시즘이 되겠다.차마 보기 부끄러워 슬쩍 눈을 돌린 것은 관객 뿐 아니라 침대아래서 노니는 큐피드도 마찬가지다. 화면 가득 찬호화로운 침실장식과 과하다 싶게 넘쳐나는 지방질의 욕정 (--;).화가는 의뢰인의 욕망을 아주 충실히 만족시켜주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그림의 구도나 차고넘치는 장식들, 보기만 해도 끓어오르는 무대의 열기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이 대작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관에서 실제로 보고 생각보다작다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크지도 않은 화면에 저렇게 가득 채워넣고 화면 밖으로까지 열기를 발산시키다니, 과연 로코코미술의 대가였다 하겠다.
시대가 어떠하든 인간의 욕망, 특히나금지된(혹은 강제로 절제된)성에 대한 욕망은 그 표현수단이 조금 더 적나라하고 은근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것은 어쩔 수 없었을게다. 엄격했던 체제하에서 욕망을 좇는 사람들은 근엄한 성화 속의 여인들을 통해서 벗은 여인의 몸을 보거나 신화의 휘장을 슬쩍 내려뜨리고 신화속의 인물을 차용해서 현실에서 적시하지 못하는 욕망을 그려냈다. 그 표현 수위는 성에 대해서라면 금기를 따로 두지 않을 만큼 개방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도 참으로 대담하기 짝이 없다.
그런 그림들 중에서 이 작품은 미술사의 에로티시즘을 논할 때에 꼭 끼는 그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