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3. 22:13




어제는 퇴근하고 간만에 그림을 보러 갔다.
그림을 모르지만, 그림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기울이는 순간이 행복하다.
그 말들은 때로 정작 작가나 그림이 하고픈 말은 아닐 때가 많다.
보여지는 대상이 보이는 대상에게 하고 있는 말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이가 듣는 말이 일치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혼자 듣는 그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솔직히 그림을 모른다.
아주 유명해서 모두들 대강 그림에 얽힌 사연을 짐작하거나 굳이 어떤 설명이 필요치 않는 <명화>라면 몰라도, 그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일상에서 늘 누리면서 체득한 이력도 없으니 내가 좋아하거나 떠드는 그림말들은 대개는 저 혼자 활개짓하고 착각하는 말들이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문자예술과 달리, 음악이나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그 파장이 다른 이런 예술은 때로 그 무지의 시간들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나름의 감동으로 살아난다.

작품들은 착했다.
소박하고 이야기가 작았다.
저희들끼리 얼크러진 꽃들, 흙더미에 눌린 꽃들, 담장에 피어오른 나팔꽃들.
참 작고 이쁜 얼굴들이었는데 저희들끼리 소곤소곤 주고받는 말들이 그렇게 이뻤다.
제목을 보지 않고 그림을 보다가 내 발길이 오래 멈추는 곳은 이상하게 그림 이름이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듣는 꽃들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어떻게 달랐던가.. 나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마침 화랑에 있던 작가선생께, 이 연작들의 주제와 그가 특히 주시하고 주목하는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얼굴이 선하게 생긴 작가는 관객의 느닷없는 질문에 익숙치 않은 것처럼 자기 그림들을 폼나고 유창하게 자랑할 줄을 몰랐다. 그게 참 그의 그림과 많이 닮아보였다.
화려한 말로 자기 이력과 작품들에 유창한 달변으로 읽어주었다면 나는 좀 실망했을 것이다.


이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도록을 얻어와놓고도, 스캐너의 연결 잭을 잃어버려서 제대로 올리지 못해 몹시 속상하다. -_-;;)
이미 주인은 정해져 있었는데 (아마 살 능력도 안되었겠지만)정말 저 그림이 꼭 갖고 싶었다.
그림을 보면서 내내, 오키프의 그 뜨거운 양귀비를 생각했다.
어쩌면 저 붉은 꽃들은 오키프의 양귀비가 뿜어내는 그 열기에 치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순빨강의 작은 꽃들이 담장에 매달려서 내게 거는 그 말들도, 들어보면 참 즐겁지 않겠는가.
그 꽃들의 종알거림이 나는 듣고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