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추색이 깊어가는 산중에서 이 늙은이 너를 부르노라 소금눈물 2011. 11. 16. 14:14 01/21/2004 12:02 am공개조회수 0 2 서리 맞은 가을 잎 바람에 지더니 楓瓢霜葉落 떨어진 잎마저 바람에 굴러 가는구나 落地便成飛 낙엽처럼 이 마음 머물 곳 없어 因此心難定 나그네 하염없이 서성이나니 遊人久未歸 윤아..... 저녁부터 기어이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산중의 홍엽 더 짙어지고 , 그만큼 산그늘도 뒤로 물러선다. 뜰 앞의 저 구절초 오래 두어야 이레를 보지 못하리.... 요사채 담장을 넘어가던 담쟁이가 떨어지는 빗물에 또 한번 철렁 흔들린다. 젖은 바람이 하루 종일 불기에 탁발을 나서려다 다시 뒷걸음을 하고 돌아와 먹을 갈았다. 산중에 묻혀 늙어가는 중이 남은 낙이 무엇이리. 홍진에 뿌리 둔 인생도 아닌 것이 걸릴 것이 또 무엇이리..... 때때로 향기 좋은 차를 가까이 하고 또 때때로 묵은 경전을 읽으니 이만한 복락이 또 없도다... 윤아.... 그러나 내내 쓸쓸하고 허전하여..... 홀로 뜰을 바라본다. 낙수가 처마 밑에 골을 이루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 기어이 책을 덮는구나........ 사람의 인생이나 축생을 받은 생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랴. 저마다 입은 옷의 모양이 다를 뿐 다 돌아가고 난 후 한 세상 건너가면 거기가 다 북망인 것을......그러나 사람의 생을 받아 고난과 기쁨을 한가지로 여긴다 하였으나 애닲은 눈물이야 내 어찌 없었으리. 감고픈 서러움이야 또 없었으리.... 빈 손 뿐인 이 늙은이의 마음에 그러나 오직 맺힌 것은 너 하나뿐이라........ 차마 애틋하고 가엾은 인연이로다 속가의 인연으로 보자면 너는 내 제자일 것이나 어찌 네게 칼을 쥐어준 이로만 살았겠느냐. 너는 내 아들이고 희망이고 기대였다. 본시 불도는 살생과는 대척의 도가 아니었겠느냐. 하물며 부처님의 법을 수행하는 자로 칼을 잡음은 그것이 살생을 위함이 아니요 더 큰 대의와 구인구세를 위함임을 늘 새기었거늘 내 너에게 이를 때에도 칼을 뺄 때에는 그 생명의 무거움을 생각하라 누누이 전한 것이라. 본시 승병은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언제나 있었다. 때때로 그 세가 지나치게 커지다가 오히려 백성의 짐이 되고 사직의 해가 된 적은 있으나 이 땅에 목숨 받아 사는 자들로 어찌 또 그 은혜를 모른다 하겠느냐.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고서야 절도 있고 중도 있지 않겠느냐.병자호란 시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항전 채비를 갖추고 남한산성을 새로 축성하였다. 그 때 각성스님을 팔도 도총섭으로 삼아 전국의 승려를 동원해 공사를 진행했다.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을 두어 군사를 배치했는데 그곳의 평상시 방어 주력군은 승병이었다. 승병은 전국의 절에서 나와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며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고 낮에는 군복을 입고 훈련하였다. 끝내 남한산성이 포위되어 함락할 지경에 이르자 전국의 의병들이 일어나고 각성스님은 격문을 띄워 승려 수 천 명을 모아 항마군이라 이름하니 바로 네가 배운 검법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 비록 성은 함락당하고 말았으나 그 분들의 호국발원을 어찌 잊으리. 그 분이 그 공로로 승도대장이라는 직함을 하사 받았으니 이것이 어찌 살생의 도를 어긴 파계라 하겠느냐. 나 역시 나라에 큰 은혜를 입어 분수에 넘치게 승군도총섭의 이름을 안고 살았으나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국난에 대비해 인재를 양성하고 훈육했을 뿐, 살생의 경지를 넘어선 적은 다행히 없었다. 빗물이 영창을 적신다.....소리없이 흔들리는 저 촛불...... 방 안을 조용히 오가는 빗소리에 귀를 세우고 듣다가 ...다시 하염없이 스산해진다. ...... 윤아 너를 처음으로 보았던 날이 떠오르는구나......어찌 어린 눈이 그리 슬펐더냐...열다섯 어린 아이의 한이 어찌 그리 사무쳤더냐. 어린 너와 옥이가 일 만배 오체투지를 하던 그 저녁..... 입술을 깨물고 엎어지는 등 뒤로 사무친 눈물이 소리없이 배이든 걸.....나는 너희 둘을 지켜보며 어쩌면 너희의 오늘을 불현듯 미리 보았는지도 모르겠다.참으로 모질고 무서운 인연이로다...... 절 마당에서 놀던 나비 같은 너희들이..... 자라면서 그 마음도 같이 기르고 있음을 내 눈치는 챘으나 무서운 세속의 법도를 알고 또 옥이도 알기에 스스로 아껴 그 인연을 피할 줄 알았다. 그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뒤늦은 이 회한을 어찌하겠느냐... 네가 숨이 진 옥이를 안고 나타났을 때 ..... 그때서야 비로소 네 마음의 깊이를 짐작하였으니 깨어나지 못하는 옥이를 두고 밤을 넘어가는 너의 그 긴 울음소리를 보고 나는 정녕....너의 마음이 두려웠다. 한 사내가 은애하는 여인의 목숨을 두고 하늘을 거는 그 마음이 정녕 두려웠다. 네가 옥이의 생명을 구할 때 이미 너의 생명은 대신 하늘이 거둔 것이었다. 네가 대신 가져가라 하지 않았느냐....하나를 줄 때에 하나를 또 거두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피 냄새가 가시면 옥이를 데려간다 하였느냐. 이미 옥이 그 아이가 그 핏물의 원인 인 것을, 그 아이가 그 모든 모진 인연의 맨 첫 끈이었던 것을 어찌 네가 씻을 수 있었겠느냐. 악연이었다. 비할 바 없이 깊은 연민도 또 원망도 다 악연이었다. 너와 옥이, 장성백 모두 만나서는 안 될 악연이었다.......그러나 하늘이 그리는 일을 어찌 인간이 벗어날 수 있었으리. 막아보고자 하였으나 너는 너무 깊이 그 아이를 품었고 옥이도 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너는 네가 사람이 아닌 줄 안게냐. 네가 그리 사랑하면 그 아이도 다칠 연이었다는 걸 몰랐더냐. 하늘이 준 운명을 어찌 그리 너희들은 거슬러만 갔단 말이냐..... 윤아...... 나는 너를 아들로 알았다. 너는 내 아들이었다. 생살을 찢는 아픔을 나는 너로 인해 알았구나. 내 발등을 넘어가는 미물 하나와 사람의 생명이 모두 한 저울에 올라가는 줄 알았으나 부모의 마음은 우주의 모든 목숨을 합한 것과 같다는 것을 너로 인해 깨달았구나... 너의 짝이 될 수 없는 몸인 걸 알았을 때,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나 또한 너에 대한 사랑과 그 재주에 대한 욕심이 커서 눈이 멀었다. 그 아이가 너를 포기할 줄 알았다. 너를 옥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 지 잘 알면서 저의 처지를 알게 되면 그 마음을 꺾을 줄 알았다. 신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지로 묶을 수 없는 몸이 되면 그 아이가 네게 깃들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있었겠느냐..... 너를 떠나서 그 악연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았다..... 내가 옥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너를 ...너를 위한다는 것이 ....너로부터 옥이를 멀리하게 하려던 마음이..... 너희를 모두 잃게 했다........ 윤아...나를 용서하지 말거라.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거라.다음 세상에서 너를 어찌 볼지, 너에게 이 뒤늦은 참회를 어찌 할지......옥이에겐 또 어찌 말 할지....정녕 두렵구나....너희 꽃 같은 두 마음을 어찌 만날지..... 나 또한 너희와 더불어 이 악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도 어리석었다..... 새벽마다 법당에 엎드리는 너의 어머니를 보면서 이 쓰리고 아픈 속을 어이하리. 그 어른, 그 마음이 내게 대겠느냐. 자식을 앞 서 보낸 어미의 마음, 내 아무리 살을 찢는 아픔이라 하더라도 그에 비하겠느냐.... 살아 있는 나날이 그대로 고문이 될 것을, 지옥이 될 것을.... 낙엽이 구르는 가을 밤, 창을 밀치고 들어오는 달빛에 깨어 문을 열면, 불은 꺼졌으되 그 한숨이 절 마당을 흐르니 차마 댓돌을 딛고 나서지 못한다. 돌아누우며 서릿발보다 더한 한기가 뼛속으로 들어온다... 아하~~! 윤아... 사람이 몸을 받아 그 생을 다 살고, 돌아가 업보대로 다음 생을 준비한다. 혹은 악업의 잣대로 축생으로 받아 산비탈을 구르고, 혹은 또 그 선업대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며, 그 정각을 깨우치면 이 헛된 윤회를 벗어나 비로소 영원한 부처의 경지로 들어선다. 그러나 윤아.... 윤아... 다시 태어나지 말거라.너의 눈물의 생은 여기까지였다. 생은 쉽게 한숨쉬며 노래하며 살 수 있는 자의 몫이다. 너처럼 목숨을 던져가며 아픈 다리로 걷는 자의 것이 아니다. 다시는 사람으로도 짐승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거라.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거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아픈 생은 여기까지였다. 흰 달과 누런 해가 뜨는 곳..거기서 너의 혼을 누이거라...다시는 이 아픈 꿈을 꾸지 말고...쉬어라... 윤아.... 내 아들아... 내 뼛속에 담은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