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2009년 8월 봉하, 돌아오는 길
소금눈물
2011. 11. 14. 17:04

내려와서 돌아다보는 부엉이 바위.
문득 서늘한 바람이 스쳐갑니다.
당신의 육과 영이 어디에 머무시든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는 이제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온 천지에 노무현 바람이 불어 그 바람이 이르는 데마다 당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기를, 그런 세상을 이제 우리가 만들겠습니다.

햇살은 오후로 들면서 점점 더 뜨거워지는데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점점 더 늘어나 봉하마을의 주차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살을 에이는 한겨울 비바람을 이 벌판에 고스란히 맞고 계셔야 하는 당신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도무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유역이 정리되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라도 한 점 드리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좀 가라앉은 마음으로 연지를 돌아다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솟대를 만들어 세운 그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습니다.
못다한꿈이 당신의 하늘길에 닿아 이르도록 고이 길잡이해주시라 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

내내 궁금했던 우리오리농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하러 나가셨는지 집이 비어있네요.

논 사이 수로를 돌아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기 주먹만한 우렁이들이 아주 보글보글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탐스러운지.
시골 고향에서 어렸을때 보고 도대체 몇 년 만인지요.
어린 시절, 하염없이 긴 여름날 등허리가 다 젖도록 땀에 절어 뛰놀다 농로를 따라 집에 돌아오다보면 콸콸 시원하게 흘러가는 수로가 있었지요.
조무라기 또래들이 모두 맨 종아리를 드러내고 뛰어들어 첨벙거리며 놀던 날들.
논들 너머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 구름, 수로 물풀을 뒤져 우렁이를 잡던 동화 같은 시절이 오롯하게 떠오릅니다.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혼자 즐거워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농촌이 농약에 찌들면서 논배미에서 우렁이를 보는 일은 아득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봉하에 와서 이렇게 만나다니.
논바닥에 우렁이가 뒹굴고 백로가 미꾸라지를 찾아 뒤지는 들녘, 거기에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풍선 처럼 띄우고 싶어했던 분.
그 분이 참 그립습니다...

어린 시절 제 고향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어요.




떠난 지 오래, 기억이 아득한 제 고향보다 이제 봉하를 더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요.

봉하농군을 발견했습니다.!!
두어 달 사이에 참 많이 컸네요.
참여정부 일꾼들이 모여 호루라기를 불며 방사를 하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다 커버렸어요.

햇살이 따가운지 어느덧 볏모 사이로 들어가 쉬고 있네요.
고생했다 오리들아.
너희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을 곳곳에 아직도 이렇게 그리움이 가득한데...

무심히 지나칠 무궁화꽃이 봉하에선 왜 이렇게 각별하게 다가올까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십니다.
국민이 국민이어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요.



봉하를 나오면서내내 함께한 그림들.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지금 이 세상은 참 슬픕니다.
하지만 이 슬픔이 다만 슬픔으로 머물지 않게 희망의 촛불을 켜는걸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외로와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디 몸과 마음을 아껴 훗날을 기약해주세요.
함께 견디며 걸어가요...

진영역은 참 조그맣고 예쁜 역입니다.

봉하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인연이 닿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남쪽의 작은 시골 역사.
이젠 단감이 많이 난다는 동네에서, 언제나 그립고 아픈 고향이 되어버렸네요.
마음 한 쪽을 두고 다시 세상으로 나는 나갑니다.
안녕히.
곧 다시 올게요.

2009년 여름 봉하나들이는 이렇게 맺습니다.
지루하고 긴 한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여름 휴가를 봉하에서 시작하며 다음 여정에 다녀온 서울 추모 사진전 이야기를 다음에 올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