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2009년 5월 25일 저녁, 대전 서대전 광장 분향소입니다
소금눈물
2011. 11. 14. 15:43

참변을 뉴스로 듣고 미친듯이 봉화마을로미친듯이 달려갔던 토요일.
울어 퉁퉁 부은 얼굴을 들지 못하던 유시민님,분향소도 미처 준비되지 않은 황망한 중에도 벌써전국 각지에서 달려와 마당을 가득 채운 울음들 사이에서 굳은 얼굴을 애써 들고 계시던 천호선님, 그리고 어느새 상주의 자리에서 우리를 맡던 김두관님...
참말로 아득하여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데.. 이 마음이 여기 가득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려니 싶어 더 서럽고 고통스런 밤이었습니다.
목구멍이 명박이보다 무서워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돌아왔습니다.
여느날처럼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합니다.
도무지 정신은 어디에 가 있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아득한데, 뉴스사이트에서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며 펑펑 울고만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오늘까지 물 한 모금 넘기기 어려운데 그래도 살아 있네요.
그러네요.. . 며칠 굶는다고, 잠을 못 이룬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죽음은 바위에 날린 꽃이 보내는 시(詩)였지, 저 같은하잘것없는 인간이 가지는 이름이 못되지요.
여기는 대전 서대전 시민의광장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나갔을때는 생각보다 조문객이 적어 가슴이 쿵 떨어지더니, 월요일 퇴근길에 직장동료들과 나갔을때는 줄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서울은 몇 시간씩 고생을 해가며 힘들게 조문을 하신다는데, 여긴 참말로 서울에 비하면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어려운가운데 힘든 발걸음으로 기꺼이 함께 해주시는 서울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럼요.. 잊을리가 있나요.
하늘이 무너지는 이 슬픔과 고통이 차츰 가라앉고, 쓸쓸한 미소로 추억을 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래도 잊을리가 있나요. 그럴리가 있나요..




만장이 되어 나부끼는 이 그리움과 슬픔의 인사.
우리는 참말로 너무나 어리석고 모자라서 당신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뒤늦은 이 미안함을 이 슬픔으로 갚고 있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하셨지만... 저는 당신의 그릇의 만분의 일도 못 되는 종재기인고로, 참으려 해도 가슴 아래서 분노와 원망이 불덩어리처럼 치솟고 있습니다.
그게 또 미안합니다. 당신의 뜻을 받들지 못해서 또 죄송합니다.
조문을 마치고 리본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데 마침 와 계시던 조문객 한 분이 혹시 노사모냐고 물어보시네요.
노사모...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노사모.. 였습니다.
2002년 그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에 이르도록 제정신이 아니게 살았던, 정말로 그 시간들이 두고두고 뜨거운 자랑으로 간직한 노사모였습니다.
하지만 그분 당선되고 저는 바로 탈퇴를 했습니다.
'정치세력화해서 공연히 그분께 누가 되고 분란이 되는 조직'이 될까봐서 미리 도망쳤습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장수가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왜 그리 나는 미리 비겁하고 옹졸했었는지요.
매서운 감시자로, 당당하게 남겠다 생각하면서 그를 그렇게 외롭게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참 많이 그를 사랑했지만 '노사모'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지금은 참 많이 후회가 됩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노무현' 하나로 금새 하나가 되고 이 천붕의 슬픔과 고통을 위안받을 수 있다니 그분의 힘이었겠지요.

시간이 갈수록 줄이 길어지네요.
제 조그만 똑딱이로는 줄을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광장에 길게 줄지어선 사람들... 조용하고 평화로이 줄을 서 있지만 지나치다보면 조용한 흐느낌이 들립니다.
이렇게 모두들 슬퍼하며 그를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아 여기서 또 반가운 분들을 만났네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인연을 맺게된 분들.
2002년 거리에서 노란 비옷을 입고 춤을 추며 어깨동무를 하던 동지들.
흐지부지 흩어졌다가 탄핵때 또 우리는 촛불을 들고 마주쳤습니다.
씨익 웃으면서, 타오르는 분노를 잠시 가라앉히고 인사를 나누었지요.
그렇게 지나쳤는데, 작년 다시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뭐야~ 무슨 팔자들이 번번히 길바닥에서 촛불들고 만나게 되냐"
씁쓸한 웃음을 주고받았는데 오늘은... 오늘은 너무 힘듭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삿말을 차마 하지도 못했는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꺽꺽 우는 제 어깨를 가만가만 도닥여주십니다.
이 마음을 당신이 알고 당신의 서러움을 내가 압니다... 촛불이 흘러 시내를 만드는, 어둠이 내려오는 광장에서 그렇게 서러운 위안을 주고받습니다.

본격적으로 어둠이 내리면서 이제오신 분들은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계시네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이웃집아저씨도 만났습니다.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고 쓸쓸히 웃으며 목례를 나눕니다.
우리는 오늘 모두 상갓집에 머무는 사람들인걸요.

퇴근을 하고, 학교수업을 마치고, 아기 유모차를 끌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여기에 모였습니다.

광장에선 영상이 흐릅니다.
친구가 저를 만나러 온다기에 기다리면서 주저앉아 보고 있습니다.


그 시절... 행복했던 시간들이 스쳐갑니다.
누가 뭐라해도 참여정부의 5년, 그 국민이었던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 시절이 지금은 너무나 시리도록 그립습니다.

조문을 마치고도 쉽게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리본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학생들.
"너무 이쁘지 않니.."
친구의 낮은 목소리에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하철 입구를 벗어난 줄이 한참 뒤로 더 물러섭니다.
밤이 깊어가는데 줄은 더 길어질 모양입니다.


이땅에 계실동안 당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지지했던, 당신은 우리에게 이만큼의 사람이었습니다.
먼길을 달려와 기꺼이 한자루초에 마음을 담아 아쉽고 그리운 마음을 마지막 인사로 남기고 싶은 사람...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그립고 아픈 사람입니다.
이렇게 씻을 수 없는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남은 당신.
지금.. 어디 계세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두 아득한 자연속의 하나이니 서러워말라고,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고 그리떠나시는 당신.
그 따뜻하고 환한 웃음을, 국민속으로 서슴없이 낮은 어깨로 들어오셔서 함께 웃으며 큰소리로 웃어주시던 당신, 체신머리없다고 누구는 웃었지만, 커다란 하트를 그려 함빡 웃어주시던 그 모습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당신의 참여정부 국민일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안녕, 안녕히, 떠나시고도 못 보내는 당신.
우리 대통령 노무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