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백제여인 은고와 장채옥에 대한 단상

소금눈물 2011. 11. 13. 22:09

 

12/04/2003 03:20 pm공개조회수 1 3


 

 

부여융의 묘지석

 

  칠지도





.. 어제 늦게까지 다모를 새기다 잠이 들었는데 오늘도 미명에 깨어 하릴없이 오래 묵혀만뒀던 책을 뒤질 짬이 났소

좀 긴 시청소감이 될 듯하니..알맹이 없이 길기만 한 글 싫어하는 분들 지금부터 가차없이 넘어가 주오

(전공이 아니니 소인이 내는 글 중에 오류가 있으면 가르쳐 주는 분이 예 계시다면 참으로 감사하게 받겠소)...

책을 넘기다 잊고 만 이름을 떠올렸소. 은고. 隱高인지 銀鼓인지 한자 부기가 없어 그 지은 이름의 뜻을 알 수는 없으나 소인의 짐작으로 둘 다 참으로 쓸쓸하고 슬픈 이름일 것 같소 뒤의 이름이라면 낙랑의 자명고도 떠올리게 하는구려


이 이름을 따로이 기억하여 애처로와 해 줄 이 많지 않을 것이오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잊혀진 여자.혹은 기억하여 떠올릴 이 있으나, 나라 멸망의 책임을 추궁받게 될 여자. 바로 사비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비요
패망한 나라의 역사를 누가 따뜻히 기억하여주겠소 해동증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왕, 7세기 그 격동의 한반도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이기도 하고, 신라 김유신의 사위가 지키던 대야성을 공격해서 김품석을 죽이고 고구려와 국세를 겨루던 왕이었소

의자왕의 아버지가 무왕이었다오 기억하오? 마동이와 선화공주.. 호족세력이 득세하던 그 시절, 적국의 공주를 어미로 둔 의자왕의 위치가 어떠했겠소. 태자시절부터 그 등극여부를 짐작할 수 없게 참으로 지난한 시절을 보냈다 하오. 그러니 왕위에 올라서도 그 위가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오. 그러다 왕비 은고가 정치의 맨 전면에 나서면서 왕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며..우리가 익히 들어온 그런..왕이 되어간다오
의자왕은 패망 후 그 태자 융과 같이 낙양으로 끌려가 며칠 후 돌아가오. 패전국의 왕이었으나 그 시절 당의 왕후장상만이 죽어 묻힌다는 북망산에 묻혔소.

몇해 전 의자왕 무덤의 지석(그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생몰연대가 어떠하다는표식이 적힌 돌이오)이, 도굴된 부장품을 거래하는 인근마을에서 발견되었다는 짤막한 단신을 들으며 참으로 장탄식을 하였소. 이제 우리의 왕은 영영 그 자는 곳을 우리에게 밝힐 수 없게 되었으니 그 후손된 자로 이리 욕을 당할 수가..

귀에 조용필의 노래로 익숙한 그 구절 기억하오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며....

소인 이 노래를 들으며 어찌 우리 성주풀이에 외국의 고도가 등장하는 지 궁금했다가 나중에 풀렸소
낙양의 북망산.. 우리네의 기억에 북망이 어떤 곳이오? 죽어 혼이 가는곳, 가 본 이 누구 없으나 우리 모두 가야하는 산... 우리 땅에 북망이 또 있소? 소인의 지식이 짧아 모르겠으나 혼자 생각으로, 나라 잃고 왕마저 뺏긴 백제 유민이 사비성에 올라 목 놓아 울 때 그 떠난 임을 부르며 생각하던 곳, 우리 임금이 묻힌 북망..거기서 유래한 건 아닌지 모르겠소

아하~!
은고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이리 쓸데없이 화면만 다 잡아먹었소 미안하오
은고가 누군지 소인이 갖고 있는 백제사가 하필 몽땅 웅진백제사라 자세한 배경을 찾을 수가 없소
역시가 흔들릴때 가장 쉽게 다치는 것이 그 역사의 한 중간에 선 여자들이기 쉽지요
은고가 어찌 살다 갔는지 (중국정사로 본 백제사에도 의자왕과 융이 끌려갔다. 도착 며칠 후 죽었다 ...라고만 나와있소. 아마는 궁이 불타고 궁녀들이 낙화암으로 달려갈 때 거기에 있었는지...)
어떤 연유로 나라를 넘어뜨린 여자란 소릴 듣게 되었는지 모르오 허나 남자들의 역사에서 성녀 아니면 악녀로 밖에 남을 수 없는, 혹은 소모품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처지의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지..쓸데없이 뒤생각을 많이 하는 이년의 머리에 오래 여운을 준 여인이었소

채옥. 장채옥

저렇게 오라비와 헤어지는 구려. 유려한 영상..이라고 쓰다 차마 더 나가지 못하오. 그 나른하고 따뜻해뵈기까지 하는 드넓은 모랫벌로, 쫓기는 말 한필과 그 말을 쫓는 사나운 무리가 보이오.비극의 시작이오
말에서 떨어져 나동그라진 어린 누이, 옷고름만 뜯어쥐고 놓치고 만 오라비, 가슴을 치는 그 아픈 이별이 후일 어떤 인연으로 다시 닿게 될지를 짐작하기도 전에 그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메이오

그 아이... 일순간에 관비로 전락해 핏물 밴 짚신을 끌고, 역시 아픈 한 영혼 앞에 나타나오

어떤 꽃은, 그냥, 거기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바람에 찢기고 날릴 수 있다는 아픈 생각을 했소
어찌 이 아이가, 외롭고 한에 사무친 그를 만났는지, 하필 그 날의 그 숲이었는지, 어찌 그런 서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내내 그 남자의 뇌리에서 그 짚신에 밴 핏물로 먼저 아프게 했는지...

성백과 윤은 다른 세상에서 만났더면 더 없는 친구가 되었을 것 같소. 그만한 인품을 가진 이였다면, 그만한 가슴을 가진 이였다면..

성백이 바라보는 중심축과 윤이 바라보는 중심축이 애초에 달랐던 때문이겠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성백과 옥을 바라보는 윤, 자신을 바라보는 옥..어제 어느 분의 고견중에 이 말씀이 나왔소. 소인도 한참전에 이런말을 한 기억이 나오

윤을 통해서 숨쉰다는 옥과 옥이 숨쉬므로 자신도 숨쉰다는 윤..비극의
삼각형은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기 어려울 거요. 폐인들 각자의 애정축이야 물론 다르지만..

원래는 우중격검에 대해 쓰려고 했소. 밥벌이 압박이 너무 크오.. 휙휙 날아다니며 쓰자니 이리 두서가 없소..정작 할말도 못 꺼내고 이 지경이오

"수련장으로 오너라..."

성큼성큼 먼저 가서...목검을 고르오...소인, 그 낮은 목소리에 숨이 넘어가오...감정을 억누른 그 목소리에 더 많은 말이 담겨있소

그리 모르느냐. 너를 걱정하는 나를 이리 모르느냐.. 네가 어찌 거기 있었느냐. 상대를 파악하기도 전에 너와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 하나로 내 이성을 마비시킨 네게, 난 무엇이냐
네게 한낱 종사관이었더냐~!! 그것 뿐이더냐~!!

네가 다칠 수도 있었다. 너의 목숨이 다칠 수도 있었다. 거기에서 내가 무슨 판단을 하고 그자가 누군지를 내가 생각할 수가 있었겠는냐
이런 내가, 내가 누구냐. 네게 내가 누구냐...

소인은 그 먹먹한 슬픔, 그 한없는 깊은 반문이 브라운관 밖으로까지 물기로 번져 나오는 듯 했소
윤은 이렇게 옥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여인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된 게 아닌가 하오
그 전까지, 이미는 품고는 있었으나 차마 드러내지 못했을 (차맛을 느낄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 난희아씨의 차맛이 어찌 내게 닿겠느냐- 도련님...오랜만에 듣는구나- 이리 불리던 시절, 옥아 너는 기억하느냐. 우리가 다만 종사관과 다모가 아닌 오누이처럼, 신분과 위치를 잊고 살았던 시절 그 행복한 시절의 부름, 너는 기억하여 이리 나를 불러 주느냐.--
..채옥의 존재와 스스로의 존재가 화르르 살아나오..나는 너를 어찌 부르느냐. 너는 나를 어찌 부르느냐. 우리는 누구냐.. 너에게 , 나에게 우리는 무엇이냐..


그 인식, 그녀에게 아껴주고 지켜준 이,마음을 속이고 바라만 봐도 행복한 이들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각인시켜주고프다는 이 무서운 욕망.... 처음 호부를 허락받은 날의 엄중한 약속, 이름을 숨기면서까지 세상의 칼날로부터 그녀를 지켜줘야했던 그 존재..

옥이는 소인에게 어쩌면...은고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던 여인 같소..

이제 그들 모두 꿈도 없을 깊은 잠을 자오..매화 향 짙은 그 꿈속에서 누가 누구의 머리맡을 지키던...이제는 모두 잊혀진 이름들일게요
한나라의 왕비였어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 적거늘 역사의 거센 소용돌이에서, 하물며 내세울 직위도 명성도 따로이 없는 자 들임에랴~~!!

오늘은 아무래도 오래 묵혀만 두었던 책들을 뒤져야 할 것 같소

쓸데없이 길기만 한 글 읽어주어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