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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오늘의 거짓말

by 소금눈물 2011. 11. 28.

 

01/18/2008 09:04 pm공개조회수 1 5


언제부터인지 소설을 잘 안 읽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설프게 숙제 들고 뛰어다니던 그 짧은 날들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말이 되든 말든 하룻밤에도 단편 하나씩 뚝딱 나오는게 너무너무 행복했고  비로소 사는 보람을 느꼈다. 글자를 깨치고 난 후 오직 하나 뿐이었던 꿈을 이제 나는 이루어가고 있는 거라는 기쁨이었다. 그것이 얼만큼의 완결성과 작품성을 가졌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먼 길을 돌아서 나는 비로소 '제 길'로 돌아섰으니까. 그렇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손을 놓게 되니 그런 시절이 있었는가 아득하기만 하다. 간절히 원하던 꿈을 과정에서 모두 해소하고 나니 정작 그 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걸까.

세상이 다 싫고 진저리가 나던 며칠, 추운 바람을 맞으며 걷다 생각해보면 내가 세상에 어떤 터무니없는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죽어라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적인 박탈감, 빈곤, 서러움을 과도하게 분노로 갖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미웠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로 포장한 편견들로 말이다.

며칠 전, 같이 소설공부를 하던 미숙언니와 통화를 했다. 아직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달콤한 위로를 받고 나니 마음이 들떴다. 아니 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아니라, 그런 말을 주고 받는 사람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안도 같은 것이었다.

소설도 잘 안 읽는데 하물며 단편이랴. 솔직히는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을 사려다가 실수로 잡은 책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선택은 실수였지만 독자로선 기분좋은 실수였다. 한겨레에서 일주일에 한 번 그의 꼭지로 만나다 제대로 된 작품으로 만난 정이현, 그의 즐거웠던 칼럼 만큼이나 즐거운 책읽기였다.
그녀의 여자들은 전경린처럼 상처에 온통 베어있지도 않고 은희경 처럼 쿨하지도 않고 공선옥처럼 완강하지도 않다. 늙지도 젊지도 않는 (어쩌면 젊은 쪽에 좀 더 가깝지만),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30대 여성들의 관념들이 내겐 그녀의 선배 작가들보다 훨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담론이 살갖에 닿지도 않고 어차피 그런 것에 관심도 없는 삶,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미약하고 치열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살지도 않는, 그저 이렇게 나이가 먹고, 주위에 피해를 주지도 않으면서 냉담하게 혼자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

너무 큰 이야기, 과도한 감상의 물기에 익숙해져있던 내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현실보다 더 무섭고 거친 것은 소설이라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지 않은가.  나는 어쩌면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하고 문장과 행간의 숨은 뜻을 추적하는 버릇이 있었나보다. 근래 참 못된 버릇에 익숙해졌던 게다.

소설을 안 읽다보니 소설 독후감도 어렵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야기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제목 : 오늘의 거짓말
지은이: 정이현
펴낸 곳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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